약파만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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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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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 약파(藥坡) 이희령(李希齡)이 우리나라 역대의 사실을 정사(正史)와 야사(野史)에서 모아 편집한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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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 학자 약파(藥坡) 이희령(李希齡)이 우리나라 역대의 사실을 정사(正史)와 야사(野史)에서 모아 편집한 역사서.
내용

94권 60책. 필사본. 규장각도서에 있다.

편자가 역대의 정사(正史)와 야사(野史)에서 채록해 편년체와 기전체를 혼용해 엮은 책이다. 이 책은 그가 완성하지 못한 것을 그의 손자인 한종(漢宗)이 편집해 1832년(순조 32)에 완성하였다.

서문과 발문에 의하면 숙종 때까지의 사실 40권을 그가 일단 완성한 뒤에 손자인 한종이 경종·영조 때의 사실을 할아버지의 뜻에 맞게 보완했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 책에서 두루 채록하면서 기휘(忌諱)·한만(閑漫)의 사실을 망라했으나, 자신의 주관이 개입되는 사론(史論) 같은 것은 쓰지 않았다고 한다.

먼저 체재를 보면 서두에 신협(申協)과 한종의 서문, 권비응(權丕應)과 한종의 발문이 있다. 권1에서 94까지는 역대의 사실을 강역·국도(國都)·명신(名臣)·국가통치 등의 소제를 달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 체재에 따른 내용을 살펴보면 권1은 삼국시대부터 산천의 변천과 역대의 강역을 기록하였다. 즉 동국산천래맥(東國山川來脈)이라 하여 산·영(嶺)·강·진(津) 등의 위치와 연혁 등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동국역대강역이라 하여 삼한(三韓)의 경계, 위만조선, 삼국조기(三國肇基), 신라·고구려·백제의 강역 등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단군에서 조선까지의 역대 국도를 밝혀 주고 있다.

권2는 약사(略史)로 고려 통합을 설명하고 있으며, 역대의 명신 54인도 싣고 있다. 권3은 조선의 영역을 밝히면서 도읍인 한성부 주변의 산과 한성부내에 있는 각 궁궐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전주 이씨 시조와 4조의 계보 및 이성계(李成桂)가 왕조 창업을 이룩한 내용을 담고 있다. 권4∼94까지는 대체로 위와 같은 체재로 태조에서부터 영조 때까지의 기사(紀事), 즉 역대의 정담(政談)과 명신의 소전을 수록하였다.

전체 기사로 볼 때 태조에서부터 명종 때까지인 조선 전기는 소략하게 다루었다. 반면, 선조와 숙종대, 그리고 손자 한종이 기록한 경종·영조 때의 사실은 자세하게 기록해 그 분량도 상당히 많이 차지하고 있다.

한편, 인용 서목은 별도로 표시하지 않았다. 다만 『경연고사(經筵故事)』·『북관지(北關志)』·『해동악부(海東樂府)』 등을 비롯한 『동각잡기(東閣雜記)』·『하담파적록(荷潭破寂錄)』·『어우야담(於于野譚)』·문집(文集)류 등 각 기사의 끝에 표시해 자신의 주견을 배제하려고 노력하였다.

연대는 명나라의 연호를 썼으며, 명나라가 멸망한 뒤에도 청나라의 연호는 쓰지 않았다. 그리고 한 왕조가 끝나는 기사 마지막에는 그 왕조의 명신·상신(相臣), 또는 공이 있는 제신(諸臣)의 약전(略傳)을 수록하였다. 여기에는 후세에 경계되는 역신(逆臣)도 포함시키고 있다.

서문에는 주견을 피한다는 생각에서 “술이부작(述而不作)하고 만대(萬代)의 공론을 따른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체 내용의 대부분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예를 들면, 조선 선조 때에는 우리 나라 명신 외에 명나라 장신록(將臣錄)도 붙여 놓은 반면, 당쟁이 심했던 숙종 때에는 명신록에 당대의 서인의 영수인 송시열(宋時烈) 등을 빼 버려 특정 정파에 치우친 듯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한 고려말 우왕이 신돈(辛旽)의 아들이 아니라는 언어(諺語 : 항간에 퍼져 있는 소문 또는 속담)를 인용하는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 채록에 있어서부터 많은 주견이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기사를 취급하면서도 일목요연한 체계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즉 조선 초기부터 숙종 때까지의 기록은 사건을 중심으로 다루다가 경종 때에는 일기식으로, 영조 때에는 월기식으로 일정한 체계를 잡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기존의 여러 서적과 마찬가지로 유가적·사대적 인식이 그대로 답습됨과 아울러 그 내용도 야사와 당색이 짙게 깔려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채록 과정에서 기휘·한만의 사실에 구애되지 않고 서술한 점과 한편으로는 정파에 치우쳐 서술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자료적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규장각한국본도서해제』(서울대학교관,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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