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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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나 소주, 약주 등을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공장.
이칭
이칭
주조장(酒造場), 술도가(술都家)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양조공은 막걸리나 소주, 약주 등을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공장이다. 양조공은 일명 ‘주조장(酒造場)’ 혹은 ‘술도가(술都家)’로 불린다. 조선 후기 시장 경제의 발달과 더불어 전문적으로 술을 빚어 판매하는 술도가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주세(酒稅) 정책의 시행은 근대 양조공인 주조장이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조장은 근대 상업적 주조 문화의 상징인 동시에 조선 후기의 가양주(家釀酒)와 술도가의 전통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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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막걸리나 소주, 약주 등을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공장.
연원

양조공(釀造工)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넓은 의미에서는 술이나 간장, 식초 따위를 담가 만들어 내는 공장이고, 좁은 의미에서는 막걸리 등의 전통주를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공장이다. 양조공은 일명 ‘주조장(酒造場)’ 혹은 ‘술도가(술都家)’로 불린다. 조선 후기 시장 경제의 발달과 더불어 전문적으로 술을 빚어 판매하는 술도가가 등장하였다. 여기에서 생산된 술은 장시(場市)의 유통망을 타고 활발하게 거래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가양주(家釀酒)와 술도가는 암흑기를 맞이한다. 1909년에는 세수(稅收) 확대를 노린 주세법(酒稅法)이 도입되었고, 1916년에는 강화된 주세령(酒稅令)으로 면허를 가진 사람만이 술을 빚을 수 있게 되었다. 일제는 가양주의 과세(課稅)를 높게 매기면서 밀주(密酒)를 가혹하게 단속하였고, 이는 상업적인 근대 양조공이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결과 1930년대 이르러 막걸리 제조와 판매를 독점하는 양조공이 각 지역으로 확산되었고, 술독의 정량화나 주세의 일원화 등과 같이 양조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변천

양조공은 성립 초기에 막걸리의 생산과 도소매(都小賣)를 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판매 단위는 되, 소두(小斗), 대두(大斗)가 기본이었다. 소비자는 직접 양조공을 방문하여 술을 살 수 있었고, 소두 이상은 양조공에서 주문 장소까지 운반해 주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막걸리 통을 자전거에 실은 배달부의 모습을 농촌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양조공은 지역의 생활 문화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근대 술 문화의 바탕이다. 전국 읍면 소재지나 장시가 열리는 곳은 주막과 술도가가 자리하여 깊은 산속 마을까지도 막걸리가 공급되었다. 심지어 육지와 멀리 떨어진 외딴섬에도 양조공이 들어서서 주조가 이루어졌다. 서해의 외연도 양조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한편 막걸리 주조에 국한되었던 양조공은 1950년대 다른 주종으로 생산을 확대했다. 이에 따라 소주 · 약주 · 과일주 등을 생산하거나 판매했고, 막걸리와 함께 특유의 전통주를 출시하기도 했다.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소재의 ‘자온 양조장’이 대표적인 예로, ‘자온 과실주’와 ‘자온 약주’가 지역 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다. 부여의 홍산장을 끼고 있던 ‘홍산 양조장’은 ‘비홍 소주’로 유명했다. ‘비홍’이라는 브랜드는 조선 시대 홍산 고을의 진산(鎭山)이었던 비홍산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이다. 또한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신대리의 ‘평신 양조장’은 약주와 함께 ‘평신 소주’를 생산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전국 도처의 양조공에서 확인된다.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의 양조공을 대표하는 ‘전주 주조’는 막걸리를 뜬 술지게미로 모주(母酒)를 빚어 지역의 상징적인 전통주로 정착시켰다.

양조공은 1960~70년대에 전성기였고, 한때는 전국 양조장의 수가 4,000여 개를 웃돌기도 했다. 그러나 1974년에 정점을 맞이한 이후 막걸리 생산은 점차 감소했다. 이는 경제 성장에 따른 음주 문화의 변화와 농촌의 공동화(空洞化) 때문이었다. 1990년을 전후로 막걸리는 맥주 · 소주에 밀려 생산량 1위의 자리를 내주게 되었으며, 경쟁력을 잃은 영세한 양조공들의 자진 폐업이 속출하였다. 양조공에서 생산된 막걸리는 이후 2008년 세계적인 금융 위기 및 ‘웰빙 바람’으로 인한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오늘날 양조공은 다양한 제품 개발과 주조 공정의 현대화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통 양조공의 주조 공간은 근대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 충청북도 진천군의 ‘덕산 양조장’을 필두로, 2014년 경기도 양평군의 ‘지평 양조장’, 2017년 경상북도 문경시의 ‘가은 양조장’이 각각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강성복, 『술도가 한 세기의 빛과 그림자』(부여의 무형문화유산, 2020)
국립민속박물관, 『양조장의 시간 공간 사람』(2019)
국립민속박물관, 『우리 술 문화의 발효 공간 양조장』(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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