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한명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경기좌도수군판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여량(汝亮)
  • 시호충경(忠景)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함종(咸從: 지금의 평안남도 강서)
  • 사망 연도1648년(인조 2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경기좌도수군판관(京畿左道水軍判官)
  • 출생 연도1592년(선조 2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장희 (성균관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강도일기 미디어 정보

강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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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병자호란 때, 경기좌도수군판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여량(汝亮). 증조는 좌참찬 어계선(魚季瑄)이고, 할아버지는 평창군수 어운해(魚雲海)이고, 아버지는 교관 어몽린(魚夢麟)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8년(광해군 10) 생원시에 합격하여, 음보로 관직에 진출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경기좌도수군판관(京畿左道水軍判官)으로, 강화로 피난하는 봉림대군(鳳林大君: 뒤의 효종) 일행을 잘 보필하였다. 1649년 소현세자(昭顯世子)의 급사로 효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로 건너가던 당시의 어한명의 충성을 회상하여 여러 차례 그 성명을 물었으나, 당시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 밝혀내지 못하였다.

그 뒤 어한명에 관한 위적(偉績)은 권상하(權尙夏)·김창협(金昌協)에 의하여 밝혀졌으며, 1816년(순조 16) 예조에 의하여 공적이 논의되었고, 좌참찬에 추증되었다. 저서 『강도일기(江都日記)』는 봉림대군 등을 갑곶진(甲串津)에서 강화까지 보호하여 건너 준 일을 쓴 일기이다.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참고문헌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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