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종(咸從). 자는 여량(汝亮). 증조는 좌참찬 어계선(魚季瑄)이고, 할아버지는 평창군수 어운해(魚雲海)이고, 아버지는 교관 어몽린(魚夢麟)이다.
1618년(광해군 10) 생원시에 합격하여, 음보로 관직에 진출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경기좌도수군판관(京畿左道水軍判官)으로, 강화로 피난하는 봉림대군(鳳林大君: 뒤의 효종) 일행을 잘 보필하였다. 1649년 소현세자(昭顯世子)의 급사로 효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로 건너가던 당시의 어한명의 충성을 회상하여 여러 차례 그 성명을 물었으나, 당시에는 아는 사람이 없어 밝혀내지 못하였다.
그 뒤 어한명에 관한 위적(偉績)은 권상하(權尙夏)·김창협(金昌協)에 의하여 밝혀졌으며, 1816년(순조 16) 예조에 의하여 공적이 논의되었고, 좌참찬에 추증되었다. 저서 『강도일기(江都日記)』는 봉림대군 등을 갑곶진(甲串津)에서 강화까지 보호하여 건너 준 일을 쓴 일기이다. 시호는 충경(忠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