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정사는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있었던, 고려 전기에 창건한 절이다. 대지 국사 찬영이 머물다 입적하였으며, 그 후 그의 제자인 선진 대선사가 주석하였다. 1424년 불교 종파의 통폐합과 함께 전국에 36개 사찰만 남기는 사찰 혁파 조치가 내려졌는데, 이때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가 있다.
억정사(億政寺)는 고려 전기에 창건한 것으로 추정되나,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는다.
고려 후기에 대지 국사(大智 國師) 찬영(粲英: 13281390)이 주석하다 입적하였다. 찬영은 14세에 삼각산 중흥사(重興寺)로 출가해 보우(普愚: 13011382)의 문하에서 수학한 선종 승려이다. 1350년(충정왕 2) 승과에 급제하였고, 공민왕 대에 양가도승록(兩街都僧錄)이 되는 등 중용되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사임하고, 석남사(石南寺)와 월남사(月南寺) 등에서 수행과 교화에 힘썼다. 1383년(우왕 9)에는 우왕이 왕사(王師)로 봉하고 억정사에 머무르게 하였다. 창왕과 공양왕이 찬영을 왕사로 모시고자 하였으나 억정사에 은둔하였고, 이듬해에 입적하였다. 입적 후 절의 동쪽 언덕에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였다.
찬영 이후에는 선진 대선사(禪軫 大禪師)가 머물렀다. 선진은 고려 후기의 문신 이색(李穡: 1328~1396)과 교류하였고, 판조계사(判曹溪事)로 궁궐 내에 설치된 불당인 내원당(內院堂)에 머무르기도 하였다. 내원당에서 물러나서는 주석하고 있던 억정사로 돌아갔다. 선진은 찬영의 제자로 스승의 비문을 지은 인물인데, 비에는 ‘선진(旋軫)’이라고 썼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억정사는 1398년(태조 7) 중흥사와 함께 전조(田租)의 납세를 면제받았다. 1424년(세종 6) 기존의 7개 불교 종파를 선교 양종(禪敎 兩宗)으로 통폐합하면서 국가 공인 사찰 수를 242개에서 36개로 축소하였는데, 억정사는 이때 공인 사찰에서 제외되었다. 2년 후 억정사 전(前) 주지 등이 혁파한 절에서 그 토지를 경작하며 살고 있다가 적발된 일이 있었다. 이들은 장형(杖刑)을 받고 환속되었고, 사찰도 이때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찬영의 탑비인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忠州 億政寺址 大智國師塔碑)가 있다. 직사각형의 비 받침 위에 비문을 새긴 몸돌을 올린 단순한 형태로, 몸돌 위쪽 양 끝을 사선을 잘라 냈을 뿐 다른 꾸밈은 없다. 1963년 1월 21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한편, 인근 백운암(白雲庵)에는 나말 여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철조 여래 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철불은 원래 이곳에 있던 불상이 아니며, 억정사 터에서 옮겨 온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