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억정사는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있었던, 고려 전기에 창건한 절이다. 대지 국사 찬영이 머물다 입적하였으며, 그 후 그의 제자인 선진 대선사가 주석하였다. 1424년 불교 종파의 통폐합과 함께 전국에 36개 사찰만 남기는 사찰 혁파 조치가 내려졌는데, 이때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충주 억정사지 대지국사탑비가 있다.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있었던, 고려 전기에 창건한 절.
원건물 건립 경위
변천
찬영 이후에는 선진 대선사(禪軫 大禪師)가 머물렀다. 선진은 고려 후기의 문신 이색(李穡: 1328~1396)과 교류하였고, 판조계사(判曹溪事)로 궁궐 내에 설치된 불당인 내원당(內院堂)에 머무르기도 하였다. 내원당에서 물러나서는 주석하고 있던 억정사로 돌아갔다. 선진은 찬영의 제자로 스승의 비문을 지은 인물인데, 비에는 ‘선진(旋軫)’이라고 썼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억정사는 1398년(태조 7) 중흥사와 함께 전조(田租)의 납세를 면제받았다. 1424년(세종 6) 기존의 7개 불교 종파를 선교 양종(禪敎 兩宗)으로 통폐합하면서 국가 공인 사찰 수를 242개에서 36개로 축소하였는데, 억정사는 이때 공인 사찰에서 제외되었다. 2년 후 억정사 전(前) 주지 등이 혁파한 절에서 그 토지를 경작하며 살고 있다가 적발된 일이 있었다. 이들은 장형(杖刑)을 받고 환속되었고, 사찰도 이때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문화유산
참고문헌
원전
- 『목은집(牧隱集)』
인터넷 자료
- [국가유산청](http://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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