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진은 비나 행장(行狀)이 없어 자세한 생애가 전하지 않는다. 국사호(國師號)도 전하지 않으나, 주변 자료들과의 비교를 통해 혜조국사(慧照國師) 혹은 혜소국사(慧炤國師)와 동일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어느 정도 생애를 확인할 수 있다.
담진은 사굴산문(闍堀山門)에 속한 선종 승려로, 그의 활동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출가 후 수행에 전념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는 쌍계사(雙溪寺), 광명사(廣明寺) 등에 머물렀으며, 화악사(華岳寺) 주지를 지냈다. 소성(紹聖, 1094~1097) 연간에는 쌍봉사(雙峰寺)를 중창하기도 하였다.
문종 연간에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이 송에 유학을 가고자 했을 때, 함께 유학가기로 약속한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인 쌍계사 대사(大師)였다. 의천의 입송(入宋)은 문종 대에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담진은 이때 송으로 건너갔던 것 같다. 임제종(臨濟宗) 승려인 정인 도진(淨因道臻, 10141093)의 법을 전수받고 송의 여러 승려와 교유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1080년 송 신종(神宗)에게 법원대사(法遠大師)의 호를 받은 후 고려 사신이 귀국할 때 함께 고려로 돌아왔다. 이후 광명사에 머물며 탄연(坦然, 10701159)을 제자로 받았고, 화악사 주지로 있을 때는 이자현(李資玄, 10611125)과 교류하며 선리(禪理)를 자문해 주었다고 한다.
두 번째 시기는 왕실, 귀족 등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왕사, 국사를 지내며 불교계를 주도하던 시기이다. 1106년(예종 1) 6월에 장녕전(長寧殿)에서 선(禪)을 강설하며 비를 빌었고, 이듬해 1월에 왕사가 되었다. 1110년(예종 5)에는 예종의 아들인 왕지인(王之印)이 그의 문하로 출가하였다. 1114년(예종 9) 3월에 국사가 되었고, 1116년 (예종 11) 1월에는 보제사(普濟寺)에서 선법을 강론하였다.
세 번째 시기는 도성을 떠나 입적하기까지의 시기이다. 담진은 보제사 설선(說禪) 후 10여 년간 이어진 번잡한 도성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하산하여 정혜사(定慧寺)를 창건하였고, 입적할 때까지 그곳에서 주로 거주하였다.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예종의 명으로 『요본대장경(遼本大藏經)』 3부(部)를 구해 오기도 하였다.
담진의 사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수선사(修禪社) 제6세 충지(冲止, 1226~1293)가 ‘성사(聖師)’라고 표현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의 사상과 행적이 고려 중‧후기 선종계에서 중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