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진 ()

불교
인물
고려 전기, 예종의 왕사 · 국사로 활동한 선종 승려.
이칭
혜조국사(慧照國師), 혜소국사(慧炤國師)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주요 관직
왕사|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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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담진은 고려 전기에 예종의 왕사·국사로 활동한 선종 승려이다. 생몰년 미상이며, 언제 누구에게 출가하였는지도 알 수 없다. 문종 연간에 송에 유학해 정인 도진의 법을 전수받았다. 예종 대에는 왕사와 국사를 역임하며, 선을 강설하는 등 여러 법회를 주관하였으며, 왕명으로 요본대장경을 들여오기도 하였다. 만년에는 하산하여 정혜사를 창건하고 그곳에서 지내다 입적하였다.

정의
고려 전기, 예종의 왕사 · 국사로 활동한 선종 승려.
가계 및 인적사항

담진은 비나 행장(行狀)이 없어 자세한 생애가 전하지 않는다. 국사호(國師號)도 전하지 않으나, 주변 자료들과의 비교를 통해 혜조국사(慧照國師) 혹은 혜소국사(慧炤國師)와 동일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어느 정도 생애를 확인할 수 있다.

주요 활동

담진은 사굴산문(闍堀山門)에 속한 선종 승려로, 그의 활동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시기는 출가 후 수행에 전념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그는 쌍계사(雙溪寺), 광명사(廣明寺) 등에 머물렀으며, 화악사(華岳寺) 주지를 지냈다. 소성(紹聖, 1094~1097) 연간에는 쌍봉사(雙峰寺)를 중창하기도 하였다.

문종 연간에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이 송에 유학을 가고자 했을 때, 함께 유학가기로 약속한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인 쌍계사 대사(大師)였다. 의천의 입송(入宋)은 문종 대에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담진은 이때 송으로 건너갔던 것 같다. 임제종(臨濟宗) 승려인 정인 도진(淨因道臻, 10141093)의 법을 전수받고 송의 여러 승려와 교유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1080년 송 신종(神宗)에게 법원대사(法遠大師)의 호를 받은 후 고려 사신이 귀국할 때 함께 고려로 돌아왔다. 이후 광명사에 머물며 탄연(坦然, 10701159)을 제자로 받았고, 화악사 주지로 있을 때는 이자현(李資玄, 10611125)과 교류하며 선리(禪理)를 자문해 주었다고 한다.

두 번째 시기는 왕실, 귀족 등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왕사, 국사를 지내며 불교계를 주도하던 시기이다. 1106년(예종 1) 6월에 장녕전(長寧殿)에서 선(禪)을 강설하며 비를 빌었고, 이듬해 1월에 왕사가 되었다. 1110년(예종 5)에는 예종의 아들인 왕지인(王之印)이 그의 문하로 출가하였다. 1114년(예종 9) 3월에 국사가 되었고, 1116년 (예종 11) 1월에는 보제사(普濟寺)에서 선법을 강론하였다.

세 번째 시기는 도성을 떠나 입적하기까지의 시기이다. 담진은 보제사 설선(說禪) 후 10여 년간 이어진 번잡한 도성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하산하여 정혜사(定慧寺)를 창건하였고, 입적할 때까지 그곳에서 주로 거주하였다.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예종의 명으로 『요본대장경(遼本大藏經)』 3부(部)를 구해 오기도 하였다.

담진의 사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수선사(修禪社) 제6세 충지(冲止, 1226~1293)가 ‘성사(聖師)’라고 표현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의 사상과 행적이 고려 중‧후기 선종계에서 중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대각국사문집(大覺國師文集)』
『원감국사집(圓鑑國師集)』
『삼국유사(三國遺事)』
「문수사 중수비(文殊寺重修碑)」
「단속사 대감국사탑비(斷俗寺大鑑國師塔碑)」
「쌍봉사 창건비(雙峰寺刱建碑)」

단행본

박윤진, 『고려시대 왕사·국사 연구』(경인문화사, 2006)

논문

정수아, 「혜조국사 담진과 ‘정인수’」( 『이기백선생고희기념 한국사학논총 상: 고대편·고려시대편』, 일조각, 1994)
김상영, 「고려중기 선승 혜조국사와 수선사」(『이기영박사고희기념논총: 불교와 역사』, 1991)
최병헌, 「고려중기 이자현의 선과 거사불교의 성격」(『김철준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 지식산업사, 1983)
관련 미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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