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향산 보현사 영산전

  • 종교·철학
  • 유적
  • 조선 후기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 보현사 경내에 있는, 1875년에 개축한 사찰 건물.
유적/건물
  • 건립 시기1875년 개축
  • 건물 층수1층
  • 건축 양식겹처마 배집
  • 소재지평안북도 향산군
  • 정면 칸수3칸
  • 측면 칸수3칸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4년
  • 김수연 (이화여대 교수, 사상사, 불교사, 고려시대사)
  • 최종수정 2025년 11월 14일
묘향산 보현사 영산전 미디어 정보

묘향산 보현사 영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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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묘향산 보현사 영산전은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 보현사 경내에 있는, 1875년에 개축한 사찰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배집이다. 보현사 동쪽으로 약 500m 있었던 건물을 현재 위치로 옮겨 왔다. 조선 전기의 건축양식이 잘 나타나 있는 건물이다.

정의

평안북도 향산군 묘향산 보현사 경내에 있는, 1875년에 개축한 사찰 건물.

건립 경위 및 변천

묘향산 보현사(妙香山 普賢寺)는 고려 전기에 창건되었으며, 조선시대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입적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31개 본산(本山) 가운데 하나로, 21개 군의 사찰을 관장하였으며, 현재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40호로 지정되어 있다. 보현사는 그동안 일곱 차례 이상 중수되었다. 한국전쟁 때 대웅전(大雄殿)과 만세루(萬歲樓), 수월당(水月堂) 등이 훼손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대웅전과 만세루는 각각 1976년과 1979년에 복원된 것이다. 1983년에 팔만대장경 보관고를 현대식으로 신축하였으며, 주변에 있던 영산전(靈山殿)수충사(酬忠祠)를 사찰 안으로 이동하였다. 영산전을 옮길 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지금 건물은 1875년(고종 12)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형태와 특징

영산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배집으로, 원래 보현사 동쪽 약 500m 지점에 있었던 것을 지금의 위치에 옮겨 왔다. 소 혀 모양의 짤막한 쇠서가 달린 공포 짜임은 조선 전기의 건축양식을 담고 있다.

참고문헌

  • 단행본

  • - 『북한의 전통사찰』(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양사재, 2011)

  • - 『북한의 사찰: 북한의 불교와 사찰, 그 과거와 현재』(대한불교진흥원, 2009)

  • -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서울대학교 출판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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