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권강탈 후 일제는 보통학교의 교과서를 위한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1912년 4월에 공표하여 시행하였는데, 개정논의가 일어나서 1921년 3월에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대요 普通學校用諺文綴字法大要>로 개정하여 공표하였다.
개정된 맞춤법도 10년 가까이 시행되는 동안에 교육계와 사회에서 문제가 제기되어, 학무국에서 다시 재정의 기초안을 만들어서 전문가로 구성된 제1차조사회(1928.9.∼1929.1.)와 제2차조사회(1929.5.∼7.)의 심의를 거쳐 확정한 것이 <언문철자법>이다.
개정된 내용은, 첫째 분철표기의 확대로 받침의 수효가 종래의 10개에 11개가 더하여지고, 둘째 된소리의 표기는 된시옷을 버리고 ‘써, 까, 쯤’과 같이 각자병서(各自並書)로써 하며, 셋째 한자음의 표기도 국어와 마찬가지로 현실발음에 따르도록 한 점이다. 결과적으로 <한글맞춤법통일안>의 내용과 매우 비슷하게 되었는데, 예컨대 받침으로 ㅋ, ㅎ이 안 쓰인 점만 다르나 그 밖의 모든 자음이 쓰이는 사실은 똑같다.
맞춤법의 명칭에 ‘보통학교용’이라는 관형어를 뗀 것은, 이 맞춤법이 개정의 이유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사회에서 행해지는 맞춤법의 통일에 기여하려는 뜻에 말미암은 바로서, <한글맞춤법통일안>과 비슷한 성격을 지니는 사실이다. 이는 장지영(張志暎)·권덕규(權悳奎)·정열모(鄭烈模)·최현배(崔鉉培)·신명균(申明均) 등 한글학회, 곧 당시의 조선어학회의 중심학자가 제2차조사회에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활약하였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맞춤법은 학무국의 제3회철자법, 또는 철자법의 제2회개정으로서, 1930년부터 순차적으로 교과서에 채택되었다.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 한글맞춤법통일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