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진(城津)에서 북쪽으로 16㎞ 가량 떨어진 학서면 업억동·원평동 사이의 작은고개[小古介]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1930년경에 일본인에 의하여 채굴이 시작되었는데 그뒤 흑연이 전기공업의 발달과 전략물자로 많이 쓰이게 되자, 이를 통제하기 위하여 1938년에 세워진 조선흑연개발회사(朝鮮黑鉛開發會社)에 흡수되었다가 다시 1941년에 조선광업진흥회사(朝鮮鑛業振興會社)에 흡수되어 가동되었다.
인상흑연은 석연(石鉛)과 토연(土鉛)으로 나뉘는데 업억광산은 토연광산에 속한다. 이 광산의 토연은 시생대(始生代)의 마천령계(摩天嶺系)의 지층에 배태되어 석묵편암(石墨片岩) 또는 석묵편마암(石墨片麻岩) 중에서 하나의 조암광물(造岩鑛物)로 산재한 것이며, 비늘 모양의 조각이 1.5㎝에 이르는 큰 결정을 이루는 상태로 산출되는 것도 있다.
토연은 품위가 낮아서 평균 2∼5% 정도이나 양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생산량을 자랑한다. 운모와 함께 산출하는 경우가 많아 선광하는 데 곤란을 겪는다.
망치 또는 연자매로 쇄광(碎鑛 : 광석을 부수어 그 중의 광분만을 빼어 내는 일)한 다음, 체[篩]를 이용하여 큰 인편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손으로 골라낸 다음 제련소로 보낸다. 노천굴(露天掘)로 채굴하며 광산 가까이에 있는 함경선의 원평역과 업억역에서 서울로 수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