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식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경상우도암행어사, 대사간,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우렴(友濂)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함양(咸陽)
  • 사망 연도1829년(순조 2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경상우도암행어사|대사간|이조참의
  • 출생 연도1774년(영조 50)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문수홍 (경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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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경상우도암행어사, 대사간,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우렴(友濂). 여광주(呂光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여선장(呂善長)이고, 아버지는 여춘영(呂春永)이다. 어머니는 임박(任璞)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95년(정조 19)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99년 도당록(都堂錄)에 오르고 이듬해 가주서(假注書)가 되었다. 1802년(순조 2)에 수찬(修撰)이 되어, 무관 인사에 편파적이고 또 왕을 시위하는 데 실수가 있었음을 들어, 병조판서 이병정(李秉鼎)을 탄핵하였다가 오히려 파직당하였다.

다시 기용되어 부응교(副應敎)·응교·사인(舍人) 등을 거쳐 1807년 집의(執義)에 올라, 정조의 묘정에 배향된 김종수(金鍾秀)의 출향(黜享)과 추탈관작(追奪官爵)을 상소하였다.

이듬해 경상우도암행어사로 다녀와 그 탐학상을 들어, 전통제사 이당(李溏), 의령현감 박종구(朴宗球) 등 전·현직수령 15명에 대하여 치죄할 것과 정치를 잘한 수령[善治守令]으로 함양군수 남주헌(南周獻)에게 포상할 것을 청하였다.

또 그 해 응교로서 황해도 장산(長山) 이북 11고을의 세곡을 돈[錢]으로 대납하게 할 것을 청하여 실시하게 하였다. 1820년에 대사간, 1822년에 이조참의, 1826년에 동지의금부사, 1827년에 다시 대사간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829년에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나라에 파견되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유관참(楡關站)에서 객사하였다.

참고문헌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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