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6책. 필사본. 그의 문집인 『호산집(壺山集)』의 부록 권1에 나오는 연보의 임오년(호산의 나이 37세 때) 사월조에 ‘여소학성(女小學成)’이라 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책이 1882년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호산의 친필본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그의 후손이 필사한 것으로 보이는 두 이본만이 남아 있다. 하나는 1897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출판한 『호산집』의 제 사책에 영인되어 있는 여소학의 저본이 그것인데 호산의 후손이 소장하고 있다. 또 하나는 홍윤표의 소장본이다.
이 두 이본은 거의 차이가 없으며 필체까지도 동일하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홍윤표소장본은 한문 원문에 주서(朱書)로 점을 찍어 놓고, 그 난상에 한글로 구결을 써 놓았다는 점이 있는데 비하여, 아세아문화사영인본은 그러한 좌점(左點)과 구결이 없다는 점일 뿐이다. 이 두 이본은 그 필사년이 각각 다르다. 아세아문화사영인본은 1915년에 필사한 것으로 보이고, 홍윤표소장본은 1932년에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제1책의 앞에 제사(題辭), 목록(目錄)이 있고, 권1의 본문이 이어진다. 제6책의 뒷부분에 여소학발(女小學跋)과 후발(後跋), 그리고 자훈방언동이고(字訓方言同異考)가 들어 있다.
그 편찬형식은 매우 특이하여 앞에 원문인 한자를 쓰고 그 한자 하나하나의 아래에 일일이 모두 한글로 석음을 달고 그 원문의 다음에 한글로 언해를 하였다. 원문에는 한자와 그 석음을 달았지만, 언해문은 순수히 한글로만 썼다.
이와 같은 형식은 동경대학본 『백련초해』와 거의 동일한 형식이 되는 셈이다. 또한 이와 같은 형식의 언해방식은 대개 부녀자를 대상으로 한 문헌에서 흔히 발견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에는 한자음만을 달아 놓는 것이 일반적인데(예컨대 『여훈언해』 등), 이 책은 한자 하나하나에 모두 석음을 달고 있어서 매우 특징적이다. 그런데 그 석음도 규범적인 석음을 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맥에 따라 다르게 달고 있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
이 책에 인용된 문헌은 『주역(周易)』·『좌전(左傳)』·『국어(國語)』·『사기(史記)』·『내훈(內訓)』·『예기(禮記)』·『여계(女誡)』·『소학집해(小學集解)』·『모시(母詩)』·『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소학언해(小學諺解)』·『오륜행실(五倫行實)』·『안씨가훈(安氏家訓)』·『논어(論語)』 등 고거제서(考據諸書)가 대단히 많다.
이 책에 쓰인 한글표기는 19세기 말의 회인군 지역어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한글로 표기되어 있는 한자의 석음과 언해문은 19세기 말의 충배방언을 반영하고 있어서, 국어사적인 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홍윤표소장본은 1990년에 홍문각에서 영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