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마을 동쪽은 높은 산으로 막혔으며 서쪽으로는 금당천이 흐르고 있는데, 이 마을의 산으로부터 농지가 시작된 곳에 금당천을 향하여 위치하고 있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신석기시대의 유물로 추정된다.
모양은 거대한 직사각형의 편평한 자연석을 수직으로 세워놓았는데, 북서방향을 하고 있으며, 둘레에는 다소 손질한 듯한 흔적이 있다.
크기는 높이 245㎝, 너비 95㎝, 두께 60㎝이다. 이 선돌은 북에서 동으로 흐르는 금당천을 바라보는 위치에 세워졌음이 주목된다. 금당천은 1914년 도계(道界)로 이용되었던 것으로 보아 경계표시로 세워진 것 같다.
석우리 내의 자연부락 명칭, 곧 이 거석이 세워진 곳을 ‘선들’(선돌), 남쪽 마을을 ‘돌담이’[石墻], 북쪽을 ‘담모랭이’[石隅: 담모퉁이]라는 지명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성계(李成桂)가 사위를 데리고 이 고장에 와서 사위에게 줄 땅의 경계를 정하면서, 좌측 경계는 이곳(석우리 선돌)으로 하고 우측 경계는 ‘점동면 처리 선돌’로 하여 ‘모두 네 땅이다.’라고 하였다 한다.
선돌 뒤(원래는 앞이어야 함.) 2m 지점에 널찍한 반석이 있는데, 이곳에서 마귀(마고)할머니가 물레를 돌리며 실을 감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반석은 아마도 제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로 보아 선돌이 숭배의 대상이었음을 추정케 한다. 현재 치성과 같은 신앙적 의례는 없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거석은 어느 곳에서든 수직으로 세웠으며 신석기 시대의 유물으로서 경계표시나 분묘(墳墓) 등의 표시인데 점차 종교적(신앙) 표석이 된 것도 있다. 여주시 점동면 처리 선돌과 함께 1992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