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2.4m, 너비 2.8m, 두께 1.3m. 북한의 보물급 문화재. 석비는 편마암을 다듬어 만들었으며 삼각형 형태이다. 비문에 의하면, 고려 말기인 1338년(충숙왕 7)와 7월 12일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비는 자연암석에 여진문자 중 소문자로 5행, 47자를 새겼는데 그 뜻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여진문자는 아골타에 의해 1119년(金 太祖5)에 대문자(大文字)가 처음 만들어졌으며, 1138년(熙宗 4)에 다시 소문자(小文字)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 소문자의 금석문이 현재 우리나라와 중국 등 몇몇 곳에 남아 있으며, 문자는 한문자(漢文字)의 형태를 변형시킨 것으로 보여지나 여진어(女眞語)가 없어졌기 때문에 해독하기 어렵다.
함경북도 경원군에도 여진문자비가 있었으나 일제에 의해 1918년 4월 25일에 조선총독부 박물관으로 강제로 입수되었고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여진문자비는 우리나라에 있는 유일한 것으로 여진문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