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대 사적을 노래하였다. 국립중앙도서관에는 ‘역ᄃᆡ가’로,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에는 ‘녁대가’로 제목이 표기된 사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필사연대가 국립중앙도서관본은 가사 본문 다음의 ‘성상 즉위 7년 풍양조씨 필서’라는 것으로 보아 고종 7년(1870년)에 필사된 것으로 보이며, 겉표지에 ‘신유년원월 대사동 신판’이라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921년 새로이 제본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학교본은 덕종 초하에 썼다는 것으로 보아 청나라 말 덕종(재위 1875∼1908) 연간에 필사된 것으로 보인다.
형식은 고려대학교본의 경우 4음보 1행 기준으로 모두 405행이 되고, 국립중앙도서관본은 이보다 약간 길어 서로 간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밖에도 권세기본, 장서각 도서본, 사재동본(史在東本)이 있어 같은 계통의 원본에서 필사된 것으로 보이며, 전사하는 과정에서 탈락과 보완이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된다.
서사(序詞)에서는 세상이 이루어지기까지의 내력과 이 가사를 짓는 이유를 노래하였고, 본사(本詞)에서는 중국의 역대 사적을 노래하였으며, 결사(結詞)에서는 이에 대한 총평으로 끝을 맺었다. 총평은 지은이의 가치관이 표출된 것으로 유교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불교 등 이단을 배척하고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비판하고 있다. 『초당문답가(草堂問答歌)』에 수록된 「역대가」와 같이 중국의 역사를 시대별로 간략하게 노래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아울러 180여 명의 인물을 거론하여 노래하였기 때문에 가사가 길어졌다.
가사의 서두에 임군을 먼저 생각하고 신자를 대강 뽑아 어린아이들에게 고금을 알리겠다고 한 것은 심수경(沈守慶)이 『견한잡록』에서 진복창의 「역대가」가 먼저 제왕을, 다음에 신자를 서술한다는 것과 같아, 진복창(陳復昌)의 「역대가」이거나 그에 가장 가까울 수 있는 「역대가」로 보여, 강전섭(姜銓燮)은 권세기본과 장서각 도서본, 사재동본을 비교하여 진복창의 「역대가」로 복원본을 만들었다. 그러나 명나라 말의 기사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단정하기는 어렵다. 원나라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는 것도 이 「역대가」의 하나의 특성이다.
내용에 고사 인용이 많고 한자어가 많아 이해하기 어려운 편이다. 그러나 그 표현이 함축적이고 때로는 사실적이기도 하여 작품의 수준이 높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