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운주산성은 세종시 운주산에 있는 내성과 외성의 구조로 축조된 대형 성곽이다. 백제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통일신라 시대의 축조물일 가능성이 있다. 둘레가 3,098m에 이르는 대형 산성으로, 내부에 다수의 건물지, 우물터, 절터 등이 있다. 산성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이미 산성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기우제단이 설치되었다. 출토된 유물, 문헌 기록 등을 종합하면 이 산성은 시대별 특징을 가지고 활용되었다. 운주산성은 한국의 산성 발달사에 있어 학술적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다.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운주산(雲住山)에 있는 삼국시대 내성과 외성의 구조로 축조된 대형 성곽. 산성.
개설
전의면과 전동면 일대는 백제와 신라의 경계지역으로 다수의 산성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운주산성은 그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산성이다. 정상부에서는 동쪽으로는 미호평야와 청주시, 북쪽으로는 천안시와 목천 일대, 남쪽으로는 세종시 일대가 조망된다. 천안과 청주 사이의 교통로가 통과하는 지역이며 양 지역의 경계지대이다.
역사적 변천
『대동지지』 성지조에도 고산산성이라 보이고 둘레 5,132척, 우물 3개소로 기록되어 있다. 『호서읍지』(1871) 전의현 산천조에는 운주산에 고성터가 있고 기우제단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들로 보아 운주산성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되었던 시기에는 이미 산성으로 기능을 하지 못하였고 그 이전 시기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기우제단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용
그 다음의 발굴조사는 서문지 주변의 대지와 성벽에 대하여 실시되었다. 조사결과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에 걸쳐 사용되었던 건물지 1동이 출토되었다. 아울러 성벽의 축조 방식도 파악되었다. 성벽 기초부는 생토층을 정지한 후 그 위로 회색의 점질토와 여기에 작은 할석들을 섞어서 다져 구성하였다.
기초다짐층의 폭은 3m, 높이는 1.8m이다. 그 위로 다듬지 않은 대형석재들을 기단석으로 올려 놓고 다시 그 위로 장방형, 방형 등 잘 다듬은 화강암계 석재를 사용하여 외벽면을 축조하였다. 기단석 위에 면석은 기단석에 비하여 20∼30㎝ 안으로 들여쌓기를 하였다. 이밖에도 배수구와 추정문지 등도 조사되었으나 이미 교란이 심하게 이루어져 그 성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연기운주산성발굴조사: 서문지 및 주변 일대』(충남발전연구원, 2002)
- 『연기 운주산성 문화유적 시굴조사』(충남발전연구원, 2000)
- 『연기 운주산성』(공주대학교 박물관, 1998)
- 「전의지역고대산성고찰」(안승주·이남석, 『백제문화』 18·19, 198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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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세종특별자치시 북서부에 있는 면. 운주산, 금성산, 국사봉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조천천이 면의 남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농업과 축산업이 발달하였으며, 전의 일반 산업 단지, 세종 미래 일반 산업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전의 비암사 극락보전(全義碑巖寺極樂寶殿), 전의 향교 등이 있다. 2019년 세종특별자치시 통계 연보를 기준으로 면적은 62.5㎢.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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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세종특별자치시 북동부에 있는 면. 운주산, 금성산, 동림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고, 면의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조천천이 흐른다. 경부 고속 철도, 수서 고속 철도, 경부선이 지나며, 특산물로는 복숭아, 배 등이 있다. 2019년 세종특별자치시 통계 연보를 기준으로 면적은 57.7㎢.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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