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안방로의 아들 안박(安鏷)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노근용(盧根容)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이원상(李元常)의 발문이 있다.
8권 4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등에 있다.
권1·2에 시 152수, 서(書) 16편, 서(序) 12편, 권3·4에 기(記) 10편, 발(跋) 3편, 서후(書後) 9편, 상량문 6편, 권4에 축문 1편, 제문 3편, 묘갈명 1편, 행장 1편, 유사 9편, 권5·6에 시 75수, 서(書) 12편, 서(序) 5편, 권7·8에 잡록(雜錄) 8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시는 오랜 지인들과 시를 지어 주고받은 것 외에 선현 또는 유적지에 대한 차운이나 만장(挽章) 등이 많다. 「숙소강재(宿昭岡齋)」는 이씨의 정각(亭閣)에서 하룻밤을 유숙하면서 소감을 술회한 것이다. 나라는 망했으나 강산과 고적은 의구함을 개탄하며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원림에 세사를 잊고 은거하려는 감정을 나타내고 있다.
서(書)는 대체로 안부를 물은 것이며, 경전이나 제자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것도 더러 있다. 「여안인약(與安仁若)」은 천주학에 대한 소신을 밝힌 글이다. 양주(楊朱)·묵적(墨翟)·도교·불교와 유교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주색(朱色)과 자색(紫色)처럼 비슷한 빛깔은 분별하기 힘들기 때문에 잘 살펴야 한다고 강조하고 천주학의 피해는 양주·묵적·도교·불교보다 더 크다고 밝혔다.
「서조전복변후(書曺田服辨後)」는 조긍섭(曺兢燮)과 전우(田愚)가 변론했던 고종의 상후 국상의 복제에 대한 설명이다. 망국의 임금이라 복을 입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이 나라의 신민으로, 특히 학자로서 의리와 명분을 망각한 처사라고 비난하고, 선비는 어떠한 경우에도 명분과 의리를 고수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기설(理氣說)」은 이와 기에 대한 해석으로, 물리적인 작용을 이기에 대입시켜 설명하였다. 이 밖에도 나라의 침탈을 애통해 한 「실국민유재(失國民猶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