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명학교

  • 교육
  • 단체
1906년 충청남도 공주(公州)에 있었던 중등과정의 사립학교.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원호 (부산대학교, 교육학)
  • 최종수정 2024년 05월 07일
영명학교 전교생 미디어 정보

영명학교 전교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06년 충청남도 공주(公州)에 있었던 중등과정의 사립학교.

내용

1903년 감리교(監理敎) 로버트 샤프(Robert A. Sharp)와 한국명이 사애리시(史愛理施)였던 그의 부인 앨리스 샤프(Alice Sharp)가 공주읍 중동 318번지 현 기독교 사회관 자리에 학교를 열어 수명의 남녀 학생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영명학교의 출발이 되었다.

1906년 10월 15일에 현 영명중 · 고등학교(永明中 · 高等學校) 구관(舊官) 터에서 정식 학교 이름을 걸고 개교하였으나 학생 모으기가 쉽지 않아 수업료 면제는 물론이거니와 교과서 학용품의 무료제공, 용돈제공이라는 특전을 베풀었으나 학생 확보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영명학교 제3회 졸업생 윤창석(尹昌錫)은 3·1운동의 한 계기가 된 동경(東京) 유학생 대표로서 2·8 독립선언을 주도하는 역할을 다하였다. 3·1운동 때는 교사 김관희의 지도 밑에 김수철 · 유준석(유관순의 오빠) 등이 주동이 되어 공주 공설시장으로 뛰쳐나가 독립만세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12년 파송된 윌리엄 린튼 선교사의 부인 샬롯 선교사는 유관순(柳寬順)을 발탁하여 영명학교에서 잠시 교육시키다가 다시 이화학당(梨花學堂)으로 보낸 연고를 갖고 있다. 1921년 현 영명중 · 고교의 구관건물이 완성되는 등 차츰 학교가 발전의 궤도에 올랐으나, 1930년 중기에 접어 들면서 일제의 기독교계 학교 탄압이 점차 가혹해져 그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다.

1940년 12월 총독부 당국은 울리암 교장의 강제출국을 명하여 귀국하게 되었고, 이후 신사참배 거부 등으로 취해진 일련의 조치에 따라 영명학교도 1941년 7월 30일 강제폐교를 당하였다.

대개 이렇게 폐교된 학교들이 8·15 광복 후 거의 다시 문을 열었으나, 동교의 경우 1949년 9월 28일에 가서야 동교 졸업생인 전 충청남도 지사(知事) 황인식을 2대 교장으로 영입해서 재출발하였다.

강제폐교 당시까지 1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그 중에는 정치가 조병옥(趙炳玉), 소설가 방인근(方仁根) 등 인사가 있다.

참고문헌

  • - 『공주영명중·고등학교』(1975)

  • - [기독교대한감리회 역사정보자료실 감리교회 역사자료 검색 서비스(https://his.kmc.or.kr)](https://his.kmc.or.kr/foreign-missionaries/43588?page=1&keyword=%EC%83%A4%ED%94%84)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