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건물이다.
조선 초기의 명신 최덕지(崔德之)와 신후경(愼後庚)이 관직을 떠난 뒤 유림의 향약소(鄕約所)로 건립하였다. ‘영보정(永保亭)’이라는 편액은 한호(韓濩)의 글씨라고 전한다. 최덕지는 학식이 높고 행동이 단정하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많은 저서를 남겼으나 현재는 불타버려서 한 권만 남아 있고 여러 현인들의 논설만 전하고 있다.
선조 이후 퇴락하여 최정(崔珽)과 신천익(愼天翊)이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 대지 400평에 건평 40평인 이 건물은 목조 기와로 되어 있으며, 네 귀에는 활주(活主 : 추녀 뿌리를 받치는 기둥)를 세웠다. 해마다 5월 5일에 풍향찰(豊鄕察)이라는 마을 축제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영보정은 일제강점기 때 청소년들에게 항일구국정신을 교육한 장소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