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 좌상 활석사리호
성 [산] 역 이름 [산]
부수 山 총획 3
명랑하다 [청] 맑다 [청]
부수 水 총획 11
경쇠 [석] 단단하다 [석]
부수 石 총획 5
남녘 [남]
부수 十 총획 9
바위 [암]
부수 山 총획 23
절 [사] 마을 [사] 내관 [시]
부수 寸 총획 6
터 [지]
부수 土 총획 7
경쇠 [석] 단단하다 [석]
부수 石 총획 5
성씨 [조] 이루다 [조]
부수 辵 총획 11
밝다 [비] 돕다 [비]
부수 比 총획 9
화로 [로] 검은 활 [로]
부수 皿 총획 16
가리다 [차] 수다스럽다 [차] 이 [자]
부수 辵 총획 15
어찌 [나] 많다 [나]
부수 邑 총획 7
비슷하다 [불]
부수 人 총획 7
앉다 [좌] 대기실 [좌]
부수 土 총획 7
형상 [상]
부수 人 총획 14
미끄럽다 [활] 물 이름 [활] 어지럽다 [홀] 다스리다 [골]
부수 水 총획 13
경쇠 [석] 단단하다 [석]
부수 石 총획 5
여관 [사] 머무르다 [사]
부수 舌 총획 8
날카롭다 [리] 이롭다 [리]
부수 刀 총획 7
병 [호] 박 [호]
부수 士 총획 12
- 예술·체육
- 작품
- 남북국
- 국가문화유산
- 이칭영태2년명 납석제호
- 명칭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 (山淸 石南巖寺址 石造毘盧遮那佛坐像 蠟石舍利壺)
- 분류유물/불교공예/사리장치/사리장치
- 소재지 부산 남구 유엔평화로 63, 부산시립박물관 (대연동,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 종목 국보(1986년 10월 15일 지정)
- 지정기관국가유산청
- 집필 1995년
- 강경숙 (충북대학교, 공예)
- 최종수정 2026년 05월 20일
전 산청 석남암사지 납석사리호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통일신라시대의 항아리.
내용
거무스름한 곱돌[蠟石]로 만들었고 항아리의 아가리 아랫부분과 몸체의 중간부분, 그리고 조금 아래쪽에 각각 두 줄의 가로선을 오목새김 하였다. 뚜껑의 윗부분에도 두 줄의 원을 그려 넣었으며, 뚜껑의 안쪽 중심부에는 간략한 연화문을 오목새김하였다. 그릇의 안과 바깥은 물레를 이용하여 다듬은 듯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항아리의 표면에는 비로자나불상조성기(毘盧遮那佛像造成記)와 함께 영태(永泰) 2년, 즉 766년(혜공왕 2)이라는 연기가 쓰여 있어서 내원사 소장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2016년 지정)의 제작 연대를 뒷받침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조상기(造像記)는 모두 136자의 이두 문자로 쓰여 있으며, 내용은 죽은 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불상을 조성하는 공양승(供養僧)과 그에 동조하여 불덕을 희구하는 중생들의 업멸(業滅)을 비는 것으로 일종의 서원문(誓願文)이다. 글자체는 해서(楷書)이며 초서(草書)로 쓴 것도 섞여 있다.
처음 이 항아리를 발견한 사람에 따르면, 본래 이 속에는 청동제의 장방형 상자가 들어 있었으며 상자 안에는 산화되어 재가 된 종이가 가득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불상대좌 중대석에 법사리(法舍利)를 봉안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사례로서 복장(腹臟)의 초기 양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영태이년명석조비로자나좌상」(박경원, 『고고미술』168, 한국미술사학회, 1985)
- 「영태이년명납석제호」(정원경, 『부산시립박물관연보』6, 부산시립박물관, 1983)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