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통일신라시대의 항아리.
내용
거무스름한 곱돌[蠟石]로 만들었고 항아리의 아가리 아랫부분과 몸체의 중간부분, 그리고 조금 아래쪽에 각각 두 줄의 가로선을 오목새김 하였다. 뚜껑의 윗부분에도 두 줄의 원을 그려 넣었으며, 뚜껑의 안쪽 중심부에는 간략한 연화문을 오목새김하였다. 그릇의 안과 바깥은 물레를 이용하여 다듬은 듯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항아리의 표면에는 비로자나불상조성기(毘盧遮那佛像造成記)와 함께 영태(永泰) 2년, 즉 766년(혜공왕 2)이라는 연기가 쓰여 있어서 내원사 소장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2016년 지정)의 제작 연대를 뒷받침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조상기(造像記)는 모두 136자의 이두 문자로 쓰여 있으며, 내용은 죽은 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불상을 조성하는 공양승(供養僧)과 그에 동조하여 불덕을 희구하는 중생들의 업멸(業滅)을 비는 것으로 일종의 서원문(誓願文)이다. 글자체는 해서(楷書)이며 초서(草書)로 쓴 것도 섞여 있다.
처음 이 항아리를 발견한 사람에 따르면, 본래 이 속에는 청동제의 장방형 상자가 들어 있었으며 상자 안에는 산화되어 재가 된 종이가 가득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불상대좌 중대석에 법사리(法舍利)를 봉안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사례로서 복장(腹臟)의 초기 양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영태이년명석조비로자나좌상」(박경원, 『고고미술』168, 한국미술사학회, 1985)
- 「영태이년명납석제호」(정원경, 『부산시립박물관연보』6, 부산시립박물관,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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