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전체 높이(뚜껑 포함) 14.5㎝, 항아리 높이(뚜껑 제외) 12.2㎝, 입지름 9㎝, 배지름 12.3㎝, 밑지름 8.4㎝. 부산시립박물관 소장. 경상남도 산청군 상장면 보선암지에 있는 석불대좌 중대석(中臺石)에서 발견된 뚜껑이 있는 항아리이다.
거무스름한 곱돌[蠟石]로 만들었고 항아리의 아가리 아랫부분과 몸체의 중간부분, 그리고 조금 아래쪽에 각각 두 줄의 가로선을 오목새김 하였다. 뚜껑의 윗부분에도 두 줄의 원을 그려 넣었으며, 뚜껑의 안쪽 중심부에는 간략한 연화문을 오목새김하였다. 그릇의 안과 바깥은 물레를 이용하여 다듬은 듯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항아리의 표면에는 비로자나불상조성기(毘盧遮那佛像造成記)와 함께 영태(永泰) 2년, 즉 766년(혜공왕 2)이라는 연기가 쓰여 있어서 내원사 소장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2016년 지정)의 제작 연대를 뒷받침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조상기(造像記)는 모두 136자의 이두 문자로 쓰여 있으며, 내용은 죽은 자의 혼령을 위로하고 불상을 조성하는 공양승(供養僧)과 그에 동조하여 불덕을 희구하는 중생들의 업멸(業滅)을 비는 것으로 일종의 서원문(誓願文)이다. 글자체는 해서(楷書)이며 초서(草書)로 쓴 것도 섞여 있다.
처음 이 항아리를 발견한 사람에 따르면, 본래 이 속에는 청동제의 장방형 상자가 들어 있었으며 상자 안에는 산화되어 재가 된 종이가 가득 들어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불상대좌 중대석에 법사리(法舍利)를 봉안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사례로서 복장(腹臟)의 초기 양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석재 항아리의 형태나 몸체 표면에 명문을 새기는 방식은 그 뒤 동화사(桐華寺) 석탑의 석합(石盒), 축서사(鷲棲寺) 석탑의 석합 등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항아리의 가치는 결국 신라시대 비로자나불상의 조성 시원(始源)을 8세기로 끌어 올려주는 조상기의 내용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하여 당시 석불의 사리 봉안과 조성에 대한 일면을 추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