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3년(명종 23) 건립. 지석의 크기 가로 59.5cm, 세로 37cm. 글씨는 자경 1㎝가 좀 넘는 해서이다. 1934년 경기도 개성에서 출토되었다.
지칭의 자는 치원(致原), 남원(南原)사람으로 속성은 윤씨(尹氏)이다. 어려서부터 불교를 좋아하였고, 중이 되어서는 홍원사(洪圓寺) 주지 교웅(敎雄)을 사사하였다.
1138년 27세의 나이로 종선(宗選)에 뽑히고, 1170년에 삼중(三重)이 되었으며, 1175년 명종으로부터 만수가사(滿繡袈裟)를 받고, 1179년에는 수좌(首座)가 되었다. 이어 1187년에는 승통(僧統), 1189년에는 영중선(領中選)이 되었다.
이듬해 나라에서 백좌회(百座會)를 열자 그를 영수로 삼았고, 1191년에는 내전(內殿)의 대장도량(大藏道場)에서 우두머리가 되었으며, 이듬해 4월 다시 종선을 맡아보다가 그만두고 삼각산(三角山)의 원각사(圓覺寺)로 내려와 머물다 12월 80세로 생을 마쳤다. 1193년 진봉산(進奉山) 남쪽 기슭으로 이장하매 제자들이 그의 덕을 기리고자 묘지에 기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