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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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제도
삼국시대, 신라의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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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 신라의 관직.
내용

울산광역시 두동면 천전리에 있는 <울주천전리서석 蔚州川前里書石>에 보인다. 이 서석에는 연도를 달리하는 글귀가 여러 개 기재되어 있는데 기미년(539) 추명(追銘)에 ‘예신(禮臣)’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명문에 따르면 을사년(525)에 법흥왕의 동생이자 진흥왕의 아버지인 사부지갈문왕(斯夫智葛文王 : 立宗葛文王)과 매(妹)와 어사추안랑(於史鄒安娘) 3인이 천전리 계곡으로 놀러왔으며, 기미년(법흥왕 26년, 539)에 다시 놀러온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때 이들을 수행하여 온 사람들의 직명이 원명(原銘)에 작공인(作功人), 작식인(作食人), 작서인(作書人) 등으로 보이고, 추명에 작공인(作功臣), 예신(禮臣), 작식인(作食人) 등이 나타난다.

글자상으로 보아 작공인과 작공신, 작식인과 작식인, 작서인과 예신은 같은 직임을 맡아 수행한 임시 직명(職名)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작서인과 예인을 같은 직임을 맡았던 사람이라 보면 작서인이 명문을 짓고 새긴 사람이므로 예신도 같은 직임을 담당했던 사람에게 붙여진 임시적인 직명이라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작서인과 예신으로 그 직명을 달리하고 예신이 추명에 나오는 사실에 유의하면, 예신은 명문을 짓고 새기는 일을 포함하여 행차시 의례 일체를 담당한 임시관직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울주(蔚州) 천전리서석(川前里書石) 명문의 연구」(김용선, 『역사학보』 81, 1979)
『역주한국고대금석문(譯註韓國古代金石文)』 2(이문기, 한국고대사회연구所 편,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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