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의 행차시에 음식물을 만들어 바치는 일을 담당했던 사람에게 붙여진 임시적인 직명이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에 있는 「울주천전리서석」에는 연도를 달리하는 글귀가 여러 개 기재되어 있는데 을사년(법흥왕 12년, 525) 원명(原銘)과 추명(追銘)에 ‘작식인’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명문에 따르면 을사년(525)에 법흥왕의 동생이자 진흥왕의 부친인 사부지갈문왕(입종갈문왕)과 매(妹)와 어사추안랑 3인이 천전리계곡으로 놀러왔으며 기미년(법흥왕 26년, 539)에 부걸지비, 지몰시혜비, 심맥부지 등과 다시 놀러온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때 이들을 수행하여 온 사람들의 직명이 원명에 작공인(作功人), 작식인, 작서인(作書人) 등으로 보이고, 추명에 작공신(作功臣), 예신(禮臣), 작식인 등이 나타난다. 여기서 작공인과 작공신은 갈문왕 등의 행차를 준비하고 주관했던 인물을 칭한 임시적 직책 칭호이며, 작서인과 예신은 명문을 짓고 새긴 사람이다.
작식인은 의미 그대로 행차시에 음식물을 만들어 바치는 일을 담당했던 사람에게 붙여진 임시적인 직명이다. 이처럼 작식인이 음식물을 담당했던 사람의 직명이라는 사실은 작식인이 모두 부인(夫人)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명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