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오리영우(梧里影宇)는 충현서원(忠賢書院) 안에 종택(宗宅)과 함께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사당 주변에는 담장이 둘려 있고 앞쪽의 출입문은 내삼문(內三門) 형식을 이루었다.
사당채의 건물은 정면 1칸, 측면 2칸의 익공(翼工)식 맞배집으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조선시대 후기 사당의 전형적인 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건물의 바닥은 외벌 기단을 돋우고 자연석의 냇돌로 테를 둘렀으며 주춧돌은 밑변이 정사각형이나 윗변은 둥글게 깎아 올렸는데 이러한 부분은 17세기의 원형으로 추정된다. 건물은 둥근 기둥을 세워 앞면에는 툇간을 마련하고 여기서 댓돌을 딛고 청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처마 밑의 익공 꾸밈새는 가늘고 여린 느낌을 주며 청 앞면에는 네 짝의 띠살문을 달았다.
청 안으로 들어서면 마룻바닥이 나타나고 안쪽으로는 영정을 봉안한 감실(龕室)이 설치되어 있다. 또 바깥벽은 옆면과 뒷면에 화방벽을 쌓았는데 돌을 성글고 가지런하게 박아 넣어 제법 높이 쌓았고, 지붕의 측면에는 풍판을 설치했다. 전체적으로 이러한 건물의 축조방식은 19세기 말기적인 수법을 드러내고 있다.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은 조선 인조 때 영의정을 지냈으며 청렴한 선비로서도 소문이 났는데 큰 벼슬을 하면서도 비가 새는 두 칸의 초가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소문을 들은 인조 임금이 새 집을 그에게 하사하였는데, 그 뒤 1693년(숙종 19) 그 집터 위에 사당을 짓고 그의 영정을 봉안하였으며 당호(堂號)를 ‘오리영우’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