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경기전(慶基殿)에서 동남쪽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흙으로 성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언덕(발이산ㆍ발산, 속칭 미목대)이 오목대이다. 조선왕조의 태조이성계(李成桂)가 고려의 3도도순찰사(三道都巡察使)로 있을 당시 군사를 이끌고 잠시 머물렀던 장소이다.
고려 우왕(禑王) 6년(1380) 금강으로 침입한 왜구가 퇴로를 찾아 남원으로 내려오자 이성계가 이들을 맞아 운봉(雲峰)싸움에서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는 길에 오목대에서 개선 잔치를 베풀었다고 전한다. 여기에는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蹕遺址)’라는 제액(題額)을 쓴 비석이 세워져 있어서 조선 왕조를 일으킨 태조이성계(李成桂)를 기념하기 위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이 비는 1900년에 세워진 것으로 앞면의 제액은 고종이 직접 쓴 글씨이고, 뒷면의 글은 고종이 짓고 김영목(金永穆)이 쓴 것이다.
오목대의 맞은편에는 이목대가 있고 그곳에도 비석이 있는데, 고종의 글씨인 ‘목조대왕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址)’라는 제액이 기록되어 있는데 조선 태조의 5대조인 목조(穆祖)이안사(李安社)의 출생지로 전하여 오는 곳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李翰) 공 이후 목조에 이르기까지 누대에 걸쳐 이곳에서 살았으나 목조대에 이르러 관원과의 불화로 함경도로 이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비각(碑閣)은 원래 오목대의 동편 높은 대지 위에 있었으나 도로확장공사로 이곳에 옮겨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