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생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무신의 난이 일어나자 가야산으로 은거한 학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고려 후기에, 무신의 난이 일어나자 가야산으로 은거한 학자.
생애 및 활동사항

성명은 미상이다. 정중부(鄭仲夫) 등에 의하여 무신의 난이 일어나자 유관(儒冠)을 벗어 버리고 가야산(伽倻山)으로 은거(隱居)하였다. 그러나 오생의 절의(節義)를 숭상하고 학문에 열중한 자세가 당시 세상에 널리 알려져 명성이 높아졌다. 또한 오생의 절조는 많은 사람들에게 높은 추앙을 받았다.

참고문헌

『서하집(西河集)』
『한국의 역사상』(이우성, 창작과 비평사, 198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