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복(同福). 아버지는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오선(吳璿)이고, 역시 충렬왕(忠烈王) 때 폐행(嬖幸)으로 재상에 오른 오잠(吳潛)의 동생이다.
1303년(충렬왕 29) 비서감(秘書監)으로서 국자감시(國子監試)를 주관하여 구환(具桓)·최해(崔瀣)·박인지(朴仁祉) 등을 선발하였다. 곧 권지우부승지(權知右副承旨)에 올랐으나, 당시 충렬왕의 측근으로서 충선왕(忠宣王)을 모함하였다하여 원나라에서 파견된 탑찰아(塔察兒) 등에 의해 정동행성(征東行省)에 수감되었다가 1304년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소환되어 한희유(韓希愈)·최숭(崔崇)·송린(宋璘)·송방영(宋邦英) 등 충렬왕의 다른 측근들과 함께 별청(別廳)에서 국정을 전단하였다.
다음 해 좌부승지(左副承旨)가 되었으며, 충렬왕을 수종하여 원나라에 가서 왕유소(王惟紹) 등과 함께 충선왕을 모해하려 하였다. 그러나 1307년 충선왕이 원나라에서 무종(武宗)을 옹립한 공으로 실권을 장악하자 곧 파직되고 섬으로 유배되었다. 1309년(충선왕 1)에는 유배되었던 충렬왕의 측근들이 대부분 소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변(鎭邊: 변경지역을 진압하는 일)으로 몰려나 풀려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