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대수(待售), 호는 응계(凝溪). 증조는 옥전백(玉全伯)이고, 할아버지는 옥안덕(玉安德)이며, 아버지는 옥사미(玉斯美)이다.
길재(吉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생원시를 거쳐 1399년(정종 1)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다. 그 뒤 성균관의 학유(學諭)·학정(學正)·박사·전적(典籍)과 안동부통판(安東府通判) 등을 거쳐, 1408년(태종 8) 경에 지대구군사(知大丘郡事)로 파견되었다.
이후 정언(正言), 예조정랑, 황해도문민질고사(黃海道問民疾苦使), 봉상시소윤(奉常寺少尹), 장령(掌令) 등을 역임하고 대구에 은거하였다.
성품이 청렴결백할 뿐만 아니라, 총명한 자질로 학문에 힘써 명망이 높았다.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안동의 묵계서원(默溪書院)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