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고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황해도문민질고사, 봉상시소윤,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대수(待售)
  • 응계(凝溪)
인물/전통 인물
  • 본관의령(宜寧)
  • 사망 연도1434년(세종 1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정언(正言)|예조정랑|황해도문민질고사(黃海道問民疾苦使)|봉상시소윤(奉常寺少尹)|장령(掌令)
  • 출생 연도1382년(우왕 8)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한충희 (계명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2월 23일
응계실기 미디어 정보

응계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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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황해도문민질고사, 봉상시소윤,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대수(待售), 호는 응계(凝溪). 증조는 옥전백(玉全伯)이고, 할아버지는 옥안덕(玉安德)이며, 아버지는 옥사미(玉斯美)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길재(吉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생원시를 거쳐 1399년(정종 1)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다. 그 뒤 성균관의 학유(學諭) · 학정(學正) · 박사 · 전적(典籍)과 안동부통판(安東府通判) 등을 거쳐, 1408년(태종 8) 경에 지대구군사(知大丘郡事)로 파견되었다.

이후 정언(正言), 예조정랑, 황해도문민질고사(黃海道問民疾苦使), 봉상시소윤(奉常寺少尹), 장령(掌令) 등을 역임하고 대구에 은거하였다.

성품이 청렴결백할 뿐만 아니라, 총명한 자질로 학문에 힘써 명망이 높았다.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안동의 묵계서원(默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한국인의 족보』(일신각,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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