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이 지역의 선사유적을 조사하던 일본인 도리이(鳥居龍藏)에 의하여 시굴, 조사되었다.
조개더미는 지역에 따라 두께가 달라 구릉상에는 표토층 밑에 1∼1.2m 두께로 형성되어 있었다. 조개더미 안에는 굴과 대합조개가 대부분이나 쇠고둥을 비롯한 서너 종류의 해물이 섞여 있었고, 이밖에도 물고기ㆍ사슴ㆍ멧돼지ㆍ토끼(혹은 여우)와 새 뼈 등이 신석기시대의 토기조각 및 석기들과 함께 검출되었다.
유물은 돌살촉ㆍ숫돌ㆍ그물추ㆍ도끼 등의 석기류와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토기의 기형은 반란형(半卵形) 외에 항아리의 조각들이 있고, 바탕흙에는 활석 또는 운모가 많이 섞여 있다.
무늬는 생선뼈무늬를 아가리에서 몸통까지 넣은 것과 아가리에만 넣은 것, 아가리에는 점줄무늬ㆍ짧은빗금무늬ㆍ번데기무늬 등을, 몸체에는 생선뼈무늬나 W자형 등을 넣은 것이 일반적이다.
토기의 바탕흙과 무늬로 볼 때 이 유적은 궁산리조개더미유적, 지탑리움집터유적, 그리고 시도를 비롯한 황해 도서지역의 유적과 같은 문화영역에 속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유적의 연대는 위의 유적들과 비교해볼 때 신석기시대 중기 후반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