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나 자라를 용(龍), 묵은 닭을 봉(鳳)에 비유하여 용봉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잉어나 자라는 예전부터 보양·강장 식품으로 이름이 높았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도 “자라찜은 왕비탕이라 하는데 맛이 몹시 좋고 가슴에 무언가 풍치 같은 것이 있는 병에 성약(聖藥)이나 그 배에 왕(王)자가 있어 보통 고기와는 다르고, 예전에 자라를 살려주고 그 은혜 갚음을 받았다는 말이 전하니 먹을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와같은 용봉탕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의 “고쵸장 외나물이 점심참이 늦었으니·용봉탕을 부러하랴 우리농군 허기졌다.”라는 구절과 같이 서민들의 음식이라기보다는 상류계급의 보양음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1892년 고종의 만 40세 생일과 등극 30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잔치에 올랐던 용봉탕의 재료는 닭 4마리, 잉어 2마리, 달걀·무 각 10개, 미나리 5움큼, 파 5뿌리, 표고·간장 각 2홉, 쇠고기 안심 반의반부[半半部], 두골 1부, 곤자소니·전복 각 1개, 해삼 5개, 잣 1홉, 참기름 2홉, 후춧가루 5석(夕) 등으로 몹시 호화롭다고 하겠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서는 큰 잉어 한마리를 내장과 알, 이리를 빼고 씻어 큰 솥에 물을 붓고 안친 뒤에 묵은 암탉 한마리를 내장을 빼고 기름을 걷어 같이 넣고 녹도록 끓여 장을 치고 더 끓여 먹는다고 하였다. 전라도 광주에서는 자라와 닭을 넣고 고는데, 탕을 먹기 전에 닭고기와 자라고기를 발라 먹은 뒤 탕을 후추와 소금으로 간을 하여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