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호포(狐浦)라고 불렀는데, 고려시대에 용진(龍津)이라 이름을 바꾸고 진(鎭)을 두었다. 1006년(목종 9)에 성을 쌓았는데 주위가 3,004척, 높이가 5척이고 삼면이 바다에 둘려 있으며 성내에 우물이 하나 있었다.
축성 후인 공민왕 때 문주(文州, 지금의 文川)에 속하게 하였고, 1379년(우왕 5)에 다시 현을 쪼개어 현령을 두었다. 1459년(세조 5)에 현을 없애고 용성사(龍城社)로 격하하여 덕원도호부에 속하게 하였다.
현의 북쪽을 나누어 명효사(明孝社)와 구산사(龜山社)라 하고 문천군에 이속시켰는데, 이 두 고을의 머리글자를 따서 오늘날 명구면이 되었다. 용진 폐현의 위치는 영흥만의 북부를 차지하는 송전만 연안으로, 농경과 아울러 해안에서는 어로를 하는 생산성이 높은 지역이며 오늘날 문천군 북성면 용진리로서 그 지명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서쪽에 소달산 봉수(所達山烽燧)가 있어 함경도 지역과 서울을 연결하였고,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부근에는 해창(海倉)이 있어 문천의 문호 구실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