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위만조선의 제3대(재위: ?~BCE.108) 왕.
생애와 활동사항
대립관계를 해소하려는 정치적 교섭이 실패로 돌아가자, 한무제(漢武帝)는 서기전 109년 마침내 무력으로 침략해왔다. 고조선은 이에 대항해 1년을 잘 싸웠으나 마침내 수도인 왕검성(王儉城)이 적군에게 포위되면서 고조선 내부는 화전 양파로 분열되었다. 주화파(主和派)는 항복을 건의했지만 우거왕이 이를 거부하자 주화파의 일부는 적군에게 투항하였다. 주화파의 한 사람인 니계상(尼谿相) 삼(參)은 서기전 108년 6월 자객을 보내 우거왕을 살해하였다. 그 뒤, 대신 성기(成己)가 최후까지 저항을 꾀했으나 마침내 왕검성은 함락되고 고조선은 멸망하였다. 이렇게 하여 우거왕은 고조선 또는 위만조선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 '우거(右渠)'는 본래 '지배자'를 뜻하는 순 우리말로, '거수(渠帥)'와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 이것이 고조선 마지막 왕의 이름으로 기록된 것이다.
우거왕이 끈기있게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위씨조선이 한나라와 대항할 만한 금속문명의 혜택을 충분히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경하기만 했던 대외정책과 지배층 내부의 분열이 고조선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참고문헌
- 『사기(史記)』
- 『삼국지(三國志)』
- 『한국사강좌(韓國史講座) 1-고대편(古代篇)-)』(이기백·이기동, 일주각, 1982)
- 「위씨조선흥망고(衛氏朝鮮興亡考)」(리병도, 『서울대학교논문집-인문사회과학-』 4, 1956 ; 『한국고대사연구』, 박영사, 1976)
- 「위만조선관계중국측사료(衛滿朝鮮關係中國側史料)에 대한 재검토(再檢討)」(김한규, 『부산여자대학논문집』 8,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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