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문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형부낭중, 병부시랑, 판장작감사, 지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176년(명종 6)
사망 연도
1237년(고종 24)
본관
안성(安城)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문하녹사|권지지후|감찰어사|호부원외랑|형부낭중|병부시랑|판장작감사 지삼사사
관련 사건
몽고 제1차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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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후기에, 형부낭중, 병부시랑, 판장작감사, 지삼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안성(安城). 아버지는 신호위중랑장 어사잡단(神虎衛中郞將 御史雜端) 김신영(金臣穎)이고, 외조는 금오위섭대장군(金吾衛攝大將軍) 이언공(李彦公)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204년(희종 즉위년)에 자인(慈仁)·장산(章山) 두 현(縣)의 수령이 되었는데 잘 다스렸으므로 채방사(採訪使)가 세 차례나 포상하기를 추천하였다. 1211년(희종 7)에 선경전직(宣慶殿直)이 되고, 영은관직 겸 5군녹사(迎恩館直 兼五軍錄事)로 옮겼다. 이후 대영승(大盈丞), 문하녹사(門下錄事), 권지지후(權知祗侯) 등을 역임하였다. 1221년(고종 8)에는 달단접반사(韃靼接伴使: 蒙古接伴使)가 되어 몽고 사신 접대 임무를 잘 처리하였다. 이어 감찰어사(監察御史), 호부원외랑(戶部員外郞), 제고사(祭告使), 양양(襄陽) 수령, 형부낭중(刑部郎中) 등을 거쳤다. 잠시 영주부사(靈州副使)로 좌천되었으나 1년 뒤 복직되었다.

1231년(고종 18)에는 달단(韃靼: 蒙古)사람들이 오자 영송부사(迎送副使)가 되어 40일 동안이나 호인(胡人)들을 접대하였다. 이듬해에는 강화(江華)로 들어가는 임금의 행차를 배행하였으며, 병부시랑(兵部侍郞)을 거쳐 조청대부 판장작감사 지삼사사(朝淸大夫 判將作監事 知三司事)가 되었다. 1237년(고종 24)에 62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강화도 북산(北山)에 장례지냈다.

참고문헌

『고려묘지명집성: 제5판』(김용선, 한림대학교 출판부, 2012)
「김중문 묘지명」(김용선, 『고려묘지명집성: 제5판』, 한림대학교 출판부, 2012)
「김중문묘지명」(김용선, 『미술자료』24,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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