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천안(天安). 아버지는 검교소감(檢校少監) 김지성(金之成)이며, 어머니는 정씨(鄭氏)이다. 상의봉어(尙衣奉御)를 역임한 □공언(□公彦)의 딸과 결혼하여 2남 4녀를 두었다.
진사시(進士試, 司馬試)에 합격한 뒤 국학(國學) 7재(七齋)의 하나인 복응재(服膺齋)에 입학하였다. 이후 관성현위(管城縣尉), 제사묘직(諸社廟直), 군기주부(軍器注簿), 김포현령(金浦縣令)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김포현령으로 재직 시 권세가들의 횡포를 억제하고 피폐해진 백성들을 일으켜서 하나같이 새롭게 하였다. 금오위녹사참군사(金吾衛 錄事參軍事)에 올랐다. 1214년(고종 1)에 60여 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고율사(古栗寺) 북쪽 골짜기의 산기슭에 장례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