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후손이다. 증조는 예부원외랑(禮部員外郞) 김주정(金周鼎)이고, 할아버지는 호부시랑(戶部侍郞) 김의선(金義先)이며, 아버지는 내원령(內園令) 김후백(金侯伯)이다. 장인은 대부소경(大府少卿) 전세균(田世均)이다. 부인 전씨(田氏)와의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다.
20세 되던 1114년(예종 9)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김유규는 병서(兵書)를 즐겨 읽고 무예를 연마했는데, 27세 때인 1121년(예종 16)에 무학시(武學試)를 치러 제2등으로 급제하였다. 고려는 1109년(예종 4)에 국학(國學)에 7재(七齋)를 설치하면서 무학(武學)을 강의하는 강예재(講藝齋)를 두었고, 1120년에는 무학생(武學生)을 대상으로 하는 무학시를 실시하다가 1133년(인종 11)에 폐지하였다. 김유규는 국학 7재의 강예재 출신으로서 무학시에 합격한 것이다.
급제 후 용만부통판(龍灣府通判)으로 나아갔다. 3년의 임기를 채운 뒤 여러 해 동안 관직 없이 지내다가 천거를 받아 중국에 사절단으로 다녀왔다. 이후 군기주부(軍器注簿), 대관령(大官令), 선성(宣城) 수령, 공역령(供驛令) 등을 거쳐 정7품인 상식직장(尙食直長)에 올랐다. 1158년(의종 12)에 64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도원역(桃園驛) 남쪽 골짜기의 서쪽 산기슭에 장례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