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927년 제주도에서 조직되었던 계(契)조직을 통한 무정부주의운동단체.
개설
같은 해 4월 9일 앞의 네 사람이 김형수의 집에 모여서 무정부주의에 관한 서적과 간행물을 구독하고, 매월 1회씩 회합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후 수 명의 동지를 가입시켰으며, 같은 해 5월 5일 고영희(高永禧)·임상오(任祥五) 등과 함께 무정부주의운동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이 계조직을 만들었다.
연원 및 변천
1930년 7월 일제의 제주도 경찰은 계원의 명부를 압수하고 계원 65명을 체포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를 사건으로 엮기가 어려워 15, 16명만 문초한 끝에 고병희·조대수·고영희·강기찬·김형수·임상오 등 6명만을 주모자라 하여 기소, 1930년 12월 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제1회 공판을 열었다.
우리계는 계원 성분으로 보나 친목과 복리증진이라는 취지로 보나 비밀조직일 수 없다. 계조직은 우리 민족의 전통 사회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고병희·조대수 등의 무정부주의자들이 이 계조직 속에서 아나키사회의 싹을 발견하여, 그 속에 무정부주의의 뿌리를 깊이 내리도록 시도했던 것이다.
참고문헌
- 『한국(韓國)아나키즘운동사전편(運動史前篇)-민족해방투쟁(民族解放鬪爭)-』(무정부주의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 『한국공산주의운동사(韓國共産主義運動史)』 2·3(김준엽·김창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69·1973)
- 『동아일보(東亞日報)』(19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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