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권 3책. 목활자본. 1789년(정조 13) 6대손 내(棶)가 편집, 간행하였고, 1874년(고종 11) 후손 문연(文演) 등이 보완, 중간하였다. 권두에 이복원(李福源)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문연·주연(胄演)의 중간발(重刊跋)이 있다. 규장각 도서·성균관대학교 도서관·연세대학교 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국역본으로 『우암 김주문집』이 있다.
권1에 시 67수, 권2에 서(書) 1편, 소(疏) 3편, 계(啓) 25편, 차(箚) 10편, 권3에 서(序) 1편, 기(記) 1편, 명(銘) 3편, 교서 1편 논(論) 8편, 표(表) 3편, 책(策) 1편, 부록인 권4∼6에 유사와 연보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 중에는 저자가 관학유생(館學儒生)으로 있을 때 보담(寶曇)·행사(行思) 두 중의 목을 베고 봉선(奉先)·봉은(奉恩) 두 절을 훼철할 것을 제의한 「청참승훼사소(請斬僧毁寺疏)」가 있다.
계에는 중국의 금제품을 들여오지 말라는 「물무중조금물계(勿貿中朝禁物啓)」, 말에 관한 행정의 폐단을 지적한 「마정정리계(馬政整釐啓)」와 그 밖에 소격서(昭格署)의 혁파 및 권신 이기(李芑)를 탄핵한 내용들이 있다.
차는 「시폐진면차(時弊陳勉箚)」·「납충벽이차(納忠闢異箚)」·「금억승도차(禁抑僧徒箚)」 등으로 모두 사료적 가치가 높다. 「응제성천도기(應製成川圖記)」는 임금이 내린 성천도에 대하여 지은 기문으로, 성천의 지리와 풍토, 그리고 군사적·경제적 중요성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논은 모두 중국의 인물을 평한 것이며, 책은 인품의 고하를 따지는 「인품책(人稟策)」이다. 부록에는 저자의 행적을 적은 기록 이외 이황(李滉)·김인후(金麟厚)·임백령(林百齡) 등 당시 명현들의 창수시(唱酬詩)인 「제공창수(諸公唱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