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0년에 경상남도 고성군 하이면에 있는 운흥사 대웅전의 하단 불화로 조성되었다. 불화의 제작 배경을 알 수 있는 화기는 하단 중앙의 직사각형 구획 안에 묵서로 쓰여 있다. 일부 잘린 부분과 박락된 곳이 있어 완전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화기 기록의 체제나 화승들의 이름 등에서 1730년에 제작된 다른 불화들과 공통점이 보인다. 이 해에 운흥사에서는 「감로왕도」를 비롯하여 「삼세불회도」, 「관음보살도」, 「삼장보살도」, 「영산회괘불도」, 「관음보살좌상」이 화승 의겸(義謙)의 주도하에 제작되었다. 당시 의겸은 운흥사에 머물면서 화승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현재는 쌍계사 성보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며, 2000년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하였으며, 크기는 세로 245.5㎝, 가로 254㎝이다. 감로도의 기본 구성인 상 · 중 · 하단으로 이루어졌으며, 부감(俯瞰)한 시점으로 그려졌다. 화면 상단에는 시선을 정면에 두고 도량에 강림하는 불보살이 칠여래를 중심으로 비중 있게 배치되었다. 이들 주변에 묘사된 구름은 불보살이 의식도량(儀式道場)에 내영(來迎)하는 동감(動感)을 강조하고 있다. 칠여래(七如來)와 불보살의 규모가 중 · 하단에 그려진 다른 존상이나 도상에 비해 큰데, 영혼의 구제에 중심을 두고 그렸기 때문으로 보인다. 칠여래는 영혼을 구제하는 주1, 보승여래(寶勝如來), 묘색신여래(妙色身如來), 광박신여래(廣博身如來), 이포외여래(離怖畏如來), 감로왕여래(甘露王如來),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이다.
칠여래의 오른쪽에는 주2이 번(幡)을 들고 화면 아래쪽을 향해 내려다보고 있으며, 그 옆으로는 관음‧ 세지보살을 협시로 둔 아미타불이 있다. 칠여래의 왼쪽에는 석장과 보주를 든 지장보살과 승려 2인을 대동한 석가여래가 있다. 두 명의 승려는 목련존자와 아난존자이다. 목련존자는 『불설우란분경(佛說盂蘭盆經)』‧ 『목련경(目漣經)』 등에서 주3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지옥에 간 목련의 설화에서 유래한다. 아난존자는 밀교계 경전 혹은 『법계성범수륙승회수재의궤(法界聖凡水陸勝會修齋儀軌)』의 수륙재문의 서문에서 아귀도에 빠지는 고통을 면한 기교대사의 설화에 의거한다. 아난존자와 목련존자를 동시에 도해한 것은 운흥사 「감로왕도」에서 우란분재와 수륙재가 모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나타낸다.
중단은 시식단을 중심으로, 2위(位)의 아귀, 의식을 진행하는 승려들과 설판재자(設辦齋者)가 중심을 이룬다. 시식단 위에는 지화(紙花)와 지물(紙物)을 올리고, 과일, 공양물을 두었다. 모란꽃과 연꽃으로 장식된 시식단에는 정성스레 마련한 공양물이 담겨 있다. 천도의 대상을 의미하는 영가의 위패는 시식단의 제일 뒷부분에 놓여 있다. 시식단 앞에 있는 아귀는 화염 장식을 갖추고 발우를 들고 합장한 자세이다. 시식단 앞에 별도로 마련한 작은 상에는 향로와 향통이 놓여 있고, 큰 촛대 한 쌍이 불을 밝히고 있다. 재를 발원한 설재자(設齋者)들은 연거푸 절을 올리고 있다.
시식단의 오른편에는 의식을 주관하고 범패(梵唄)를 하는 승려들이 비중 있게 묘사되어 있다. 바닥에는 돗자리를 깔아 의식승들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구획하였다. 재를 총괄하는 노승은 의자에 앉아 주4을 흔들며 법계의 고혼(孤魂)들을 불러내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합장한 승려와 소금(小笒)과 장구를 든 승려, 바라를 치고 나발을 부는 승려, 대고를 치는 승려 등이 있다. 의식승들은 저마다 소임에 따라 다른 모자를 쓰고 있다. 금강령을 흔들며 집전하는 승려를 비롯한 작법승(作法僧)들은 여수 흥국사 「감로도」[1723], 안국암(安國庵) 「감로도」를 비롯하여 쌍계사 「감로도」, 선암사 서부도암 「감로도」 등 주로 의겸 또는 의겸파 화승이 활동한 지역의 감로도에 보이는 공통된 요소이다.
한편, 의식승 사이에는 의식문을 읽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승려들 이외에 꽃을 받쳐 든 두 명의 승려가 서 있다. 꽃을 들고 있는 승려의 모습은 쌍계사 「감로도」[1728]를 비롯하여 선암사 「감로도」[1736], 원광대학교 박물관 소장 「감로도」, 봉서암 「감로도」, 신흥사 「감로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시식단의 왼편과 하단에는 다양한 인물이 묘사되어 있는데, 계획된 구성에 따라 채운(彩雲)과 수목(樹木)을 경계로 나타난다. 사공사선(四空四禪), 일체 천선(天仙), 제왕과 후비, 뛰어난 옛 관리와 명현, 수행 승려들과 도인들이 셋, 넷씩 자리하였다. 이들은 전체 장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시선은 모두 아귀와 의식이 진행되는 도량으로 향하고 있다.
의식의 천도 대상으로 참석한 고혼들은 하단부에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운흥사 「감로왕도」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 중 하나이다. 곡예를 하는 사람 옆에서는 똑같은 자세로 줄 위에 올라타 피리를 불고 있고, 당번(幢幡)을 들고 가는 행렬 앞에는 똑같은 자세로 망령이 당번을 들고 있다. 줄을 팽팽히 당기거나, 수레를 미는 사람들 뒤에서 함께 수레를 밀거나, 재를 설하는 상주 옆에서 그들과 똑같이 절을 하거나, 전쟁이 한창인 곳에서 말을 타고 달리거나 하고 있다. 채색은 녹색과 적색을 중심으로 하였으나, 구름 부분에는 흰색이 섞인 양녹색이 쓰여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운흥사 「감로도」는 조계산문을 중심으로 영남과 호남, 충청 지방에서까지 활약한 의겸이 수화승으로 제작을 이끈 불화로, 18세기 감로도의 전형을 정립한 작품이다. 치밀한 구성, 설채법, 짜임새 있는 화풍 등에서 뛰어난 작품임과 동시에, 이후 제작되는 감로도의 모본이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