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2고주 5량가의 다포계 맞배지붕건물. 운흥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의 본거지였으며, 지금의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31년(영조 7)에 중건한 것이다.
정면 어칸의 기둥 간격이 좌우 협칸이나 퇴칸보다 넓어서 어칸에 2구, 나머지 칸에 각 1구씩의 공간포를 배열하였다. 공포(栱包)의 간격이 일정한 것으로 보아 공포 간격을 고려하여 기둥 간격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건물 정면 기둥 사이에는 공간포를 배설하였으나 배면에는 공간포 대신 정방형의 화반(花盤)을 배치하였다. 이러한 공포구성으로 주심포계와 다포계가 절충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기둥은 비교적 높고 배흘림이 있으며, 배면 바깥기둥은 정면에 비해 평방에 주두 높이를 더한 만큼 더 높다.
건물 정면 귀포는 팔작집에서 볼 수 있는 귀한대를 사용하여 구성한 데 반해 배면 귀포는 일반 기둥의 상부 공포와 같다. 측면에는 정면 퇴간에만 공간포를 배설했다. 공포의 짜임은 외2출목, 내3출목이며 살미첨차는 마구리를 비스듬히 절단한 긴 앙서형이다.
첨차에는 공안이 없으며, 마구리를 수직으로 절단하고 밑면을 교두형(翹頭形)으로 깎았다. 출목 대 · 소 첨차의 길이는 주심 대 · 소 첨차에 비해 상당히 짧으며, 주두의 전체 높이에 비해 굽이 낮다.
평방은 정면과 측면의 앞쪽 퇴칸에만 있으며, 나머지 기둥 사이에는 평방을 두지 않았다. 천장은 우물천장이고, 부처님을 모신 수미단(須彌壇)의 조각은 화려하고 섬세하다. 전체적으로 18세기 초의 다포계와 주심포계가 절충된 건축양식과 공포의 세부구성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