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호적대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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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호적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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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상도 울산부에서 관내의 호구를 조사하여 면리별로 정리하여 엮은 관찬서. 호적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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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경상도 울산부에서 관내의 호구를 조사하여 면리별로 정리하여 엮은 관찬서. 호적대장.
내용

규장각에 1609년(광해군 1)에서 1904년까지의 장적(帳籍) 59책이 소장되어 있다. 조선시대 때는 3년마다 전국의 호구(戶口)를 행정구역별로 조사하여 호구의 수와 이들의 직역(職役:신분) · 성(性) · 연령 등을 파악하고, 또 그 동안의 출생 · 사망 · 이주 · 도망 상황 등을 파악하였다.

호적은 원칙적으로 식년(式年:子 · 卯 · 午 · 酉年)마다 작성되었는데, 이때 각 지방 관아의 색리(色吏)와 면 · 이의 임원(里正 · 風憲 등) 등이 면별로 각 호주(戶主)로부터 호구식(戶口式)에 따른 호구단자(戶口單子)를 2통씩 받아서 확인하였다.

그런 다음, 수령이 이를 수합하여 전식년(前式年)의 호적대장과 대조해서 각 이동별로 가좌순(家座順)에 따라 오가작통(五家作統:범죄자의 색출, 세금 징수, 부역의 동원 등을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하여 다섯 민가를 한 통으로 묶던 호적제도)해서 1통은 해당 호주에게 돌려 주고, 다른 1통은 호적 색리에게 주어 새로운 호적대장을 면별로 작성하게 하였다.

이렇게 작성된 호적대장은 본읍(本邑)에 두고, 다른 2부를 더 만들어 1부는 감영에, 1부는 호조(戶曹, 조선 후기에는 한성부)에 보냈다. 울산부의 장적 역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작성된 3부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현재 울산부 관내의 대장이 전부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장적의 해당연도와 지역[面]은 〈표〉와 같다.

연도 지역 (면) 책수 연도 지역 (면) 책수
1609(광해군 1) 東 · 西 · 南 · 北 1 1898(광무 2) 上府內 1
1672(현종 13) 內廂 · 農所 · 凡西 · 大代 1 1900(광무 4) 上府內 1
1684(숙종 10) 內廂 1 寺刹僧戶籍 1
1687(숙종 13) 溫陽 1 1901(광무 5) 內廂 · 屠汗戶籍 1
1699(숙종 25) 農所 · 凡西 · 大代 1 1902(광무 6) 寺刹僧戶籍 1
1705(숙종 31) 府內 · 內廂 1 1903(광무 7) 寺刹僧戶籍 1
1708(숙종 34) 府內 · 內廂 1 1904(광무 8) 屠汗戶籍 1
1720(숙종 46) 大峴 · 靑良 1 寺刹僧戶籍 1
1729(영조 5) 柳浦 · 農所 · 凡西 1
1735(영조 11) 柳浦 · 農所 · 凡西 1
1753(영조 29) 柳浦 · 農所 · 凡西 1
1759(영조 35) 柳浦 · 凡西 1
1765(영조 41) 大峴 · 靑良 1
溫陽 · 熊村 1
柳浦 · 農所 · 凡西 1
1768(영조 44) 大峴 · 靑良 1
1771(영조 47) 上下府內 · 內廂 · 東 1
溫陽 · 熊村 1
1774(영조 50) 上下府內 · 內廂 · 東 1
溫陽 · 熊村 1
柳浦 · 農所 1
1783(정조 7) 大峴 · 靑良 1
1786(정조 10) 上下府內 · 內廂 · 東 1
1789(정조 13) 上下府內 · 內廂 · 東 1
1792(정조 16) 大峴 · 靑良 1
1795(정조 19) 大峴 1
熊村 1
1801(순조 1) 農所 · 凡西 1
大峴 1
1803(순조 3) 農所 · 凡西 1
1810(순조 10) 東 · 靑良 1
上府內 · 柳浦 1
1819(순조 19) 上府內 · 柳浦 1
1825(순조 25) 大外 · 柳浦 1
熊村 1
1831(순조 31) 溫北 1
1834(순조 34) 上府內 1
溫南 · 農西 1
1840(헌종 6) 上府內 1
1843(헌종 9) 上府內 1
1849(헌종 15) 熊村 1
下府內 1
1858(철종 9) 內廂 1
1864(고종 1) 靑良 · 溫南 · 外南 1
1867(고종 4) 柳浦 · 農東 · 送西 1
1870(고종 7) 上府內 1
1876(고종 13) 大峴 · 溫北 1
1879(고종 16) 內廂 1
1882(고종 19) 內廂 1
1885(고종 22) 上府內 1
1891(고종 28) 上府內 · 靑良 · 西生 1
〈표〉 장적 내용

이러한 울산부 호적대장은 조선시대의 사회 · 경제사 연구의 제일차적인 자료가 된다. 특히 신분문제와 관련된 연구 성과, 즉 18·19세기의 울산부 장적에 반영된 일반적인 경향은 양반층의 급격한 증가현상과 상민층의 상대적인 격감, 외거노비(外居奴婢)의 실질적인 소멸현상 및 솔거노비(率居奴婢)의 광범위한 도망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울산부장적(蔚山府帳籍)』
「조선후기 사회신분제의 붕양-울산부호적대장(蔚山府戶籍臺帳)을 중심으로-」(정석종, 『대동문화연구』 9, 1972)
「울산부호적(蔚山府戶籍)에 관한 소고」(김광영, 『도서관』 4,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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