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최북단에 위치하며 1929년과 1930년 두 차례에 걸쳐 부분적인 발굴이 실시되었다. 유적은 웅기 서쪽의 용수호(龍水湖) 동안(東岸)의 비교적 낮은 모래구릉 경사면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층위(層位)는 위로부터 표면이 부식된 엷은 검은색층, 조개껍데기가 섞인 검은 갈색층, 다수의 석기ㆍ골각기ㆍ토기ㆍ동물뼈가 섞인 검은층의 순으로 중첩되어 있다. 돌로 만든 유구(遺構) 및 온돌유구로 생각되는 석물(石物)이 검은층과 황갈색의 생토층(生土層) 사이에서 확인되었다.
검은층은 장소에 따라 두께의 차이가 있다. 가장 두꺼운 곳은 표토 아래 1.8m 및 1m 이상의 포함층을 이루고 조개껍데기층의 두께도 30∼50㎝로 차이가 있다.
출토유물 중 석기로는 대형의 丁자형 뗀돌도끼[打製石斧], 간돌도끼[磨製石斧], 간돌침[磨製石針], 흑요석제(黑曜石製)의 창(槍)편이 있다. 특히, 14㎝ 길이의 간돌살촉[磨製石鏃]은 제작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뼈로 만든 제품으로는 뼈살촉[骨鏃]ㆍ뼈바늘[骨針]ㆍ낚시바늘[釣針] 외에 여러 종류의 미완성품 등이 발견되었다. 조개껍데기로 만든 팔찌[貝釧]도 있었다.
토기는 표면을 문질러 붉은빛을 내게 한 토기편, 검은색을 나타내는 토기편, 빗살무늬토기편[櫛文土器片]과 민무늬토기편[無文土器片]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인골(人骨)로는 성인과 유아의 뼈가 확인되었는데 모두 바로 누인 펴묻기[伸展葬]로 되어 있다. 또한 함께 발견된 동물의 뼈는 사슴ㆍ소ㆍ개ㆍ돼지의 뼈가 대부분이었다.
최하층에서 발견된 화덕자리[爐址]와 온돌자리[溫突址]는 매우 중요한 유구이다. 화덕자리는 돌을 이용해 둥글게 돌린 뒤 점토(粘土)를 고르게 발랐고 몇 개의 돌덩이를 내부에 배치하였으며, 한편으로 장방형 석실(石室)의 형태의 연도(羨道)를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유적은 한반도 동북지방 선사시대의 대표적 유적으로 꼽히고 있으며 고고학상으로도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