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원주(原州). 자는 유량(孺良). 목사 원명구(元命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원경하(元景夏)이다. 아버지는 우의정 원인손(元仁孫)이며, 어머니는 남유상(南有常)의 딸이다.
1790년(정조 14) 사마시에 합격한 뒤 관직에 나아가 활동하다가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하였다. 1801년(순조 1) 도기(到記)의 제술시에 1등으로 합격하여 전시에 직부되고, 이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정랑에 제배된 뒤 정언(正言)이 되었다. 그뒤 삼사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벼슬이 호조참판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