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년에 일인 고미야(小宮)가 채굴권을 얻어 개발한 다음 그 광석을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거주하던 독일인 상회를 통하여 독일로 수출하였다.
1911년 이후 일인들 명의로 전전하다가 1940년에는 조선토상흑연광업조합이 결성됨에 따라 이에 흡수되었고, 그 뒤 생산 통제를 받아 1941년에 다시 조선광업진흥회사에 흡수되었다.
충청북도와 경상북도와의 경계에 있는 팔음산(八音山)의 서쪽 사면에 월명광산이 있는데 이 산의 남쪽 사면인 상주시에는 같은 맥상의 득수광산(得水鑛山)이 있어 통칭 월명득수광산이라고도 한다. 광구는 선캄브리아기에 속하는 사암(砂岩)·규암(硅岩)·점판암(粘板岩)·운모편암(雲母片岩)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광구의 서쪽 끝 부근에는 화강암이 분출되어 있다.
이 경계 지역 부근에서 광상(鑛床)은 하나의 향사부(向斜部)를 이루고 있으며, 광상은 이들 퇴적암 속에 편도상(扁桃狀)을 이루며 심한 불규칙형태로 배태되어 있다. 이 중에서 광맥은 3개 층을 이루어 형성되어 있는데 주향(走向)은 동서 방향으로 되어 있다. 광층의 두께는 큰 곳은 20m에 이르기도 한다. 광산은 성적곡(聖積谷)과 월명곡(月明谷)의 2개소로 나뉘어 있다.
성적곡의 지층은 북으로 60° 가량 경사지고, 월명곡의 지층은 반대로 남쪽으로 60° 가량 경사져 있다. 광산의 부광부(富鑛部)는 채굴에 의하여 거의 없어지고, 채굴되어 버린 갱은 폐석을 충전하여 메워져 있다.
1987년의 토상흑연 생산량은 2만 8,000t 가량으로 남한에서 가장 규모가 큰 광산이다. 이들 광석은 화물차편으로 청산(靑山)을 거쳐 경부선의 황간역과 옥천역 등에서 국내외로 수송되었으며, 1987년에 폐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