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1771년(영조 47) 위판조성도감을 설치하고 그 행사를 치른 뒤에 작성되었다. 규장각 도서에 있다.
앞에 목록이 있고, 이어 좌목(座目)·계사(啓辭)·전교(傳敎)·의주(儀註)·예조절목·병조절목·이문(移文)·내관(來關)·감결(甘結)·상전(賞典)·의궤(儀軌)·노정기(路程記)·반차도(班次圖) 등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좌목」의 이조별단(吏曹別單)에 의하면 당상에 행호조판서 조운달(趙雲達) 등 3인, 낭청에 조재술(趙載述) 등 3인이 임명되었다.
「계사」 및 「전교」에는 1771년 이득리(李得履)의 상소에 따라 전주이씨 시조인 사공공의 추제(追祭)를 봉행하기로 하여 계경묘(啓慶廟)를 짓고, 경기전(慶基殿)에 태조의 영정을 봉안할 때의 일기를 참고하여 신위판을 봉안하게 된 전말이 기록되어 있다.
「의주」에는 신위판봉안자정전후친제의(神位版奉安資政殿後親祭儀」·왕세자아헌의(王世子亞獻儀)·계경묘신위판봉예고유작헌례의(啓慶廟神位版奉詣告由酌獻禮儀)·동시왕세손배참행례의(同時王世孫陪參行禮儀) 및 신위판을 봉례할 때의 왕세손수하기영의(王世孫隨賀祗迎儀)·계경묘신위판봉예의(啓慶廟神位版奉詣儀) 등에 대한 설명이 있다.
「의궤」에는 위판을 비롯하여 신주를 모셔두는 주독(主櫝), 천을 재는 포백척(布帛尺), 목수가 쓰는 영조척(營造尺) 등의 도식이 있다.
그 다음 「노정기」에는 서울을 출발하여 과천을 경유, 전주의 계경묘에 도착하기까지의 자세한 노순과 일정이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다. 그 뒤 마지막으로 14면으로 된 채색반차도가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