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득신(劉得信)은 1896년 경기도 노해면 울계리에서 태어났다. 본적지는 서울 서대문구 대연 37로 되어 있는데, 차이가 난다. 이명은 홍익수(洪益洙)이다. 사립 창흥학교를 졸업하였다. 1911년 배재학당을 졸업하고, 1911년 5월 만주로 건너가 류허현〔柳河縣〕에 있는 신흥강습소에 입학하여 9월에 수료하고 귀국하였다. 1912년 3월부터 7월 사이에 일본 도쿄신학회에서 기독교 교육을 받고 귀국하였다.
1920년 10월 왕십리의 목사 김태현(金泰鉉)의 집에서 김상옥(金相玉)을 만났는데, 그의 권유로 암살단에 가입하였다. 그는 김상옥으로부터 권총 1정과 탄환 3발을 받았다. 몇 차례에 걸쳐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유득신은 1920년 10월에서 1921년에 걸쳐 부호의 집에 침입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징수하였다. 1920년 10월 10일 경기도 고양군(지금의 고양시)의 경기도평의원 임종상(林宗相)의 집에 침입해 들어가 군자금 20원을 징수하여 김상옥에게 전달하였다. 10월 20일에는 경성의 이범열에게 2천 원을 내라는 협박장을 발송하기도 하였다. 10월 30일 이만응(李晩應)의 집에 침입하여 군자금을 징수하여 김상옥 또는 임시정부 특파원 홍준(洪俊)에게 건네주었다. 이어 변호사 정구창에게 5천 원을 요구하였다.
1921년 1월에는 김영두 집에 침입하여 200원의 군자금을 받아냈다. 1921년 1월 검거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