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계림부윤, 상의중추원사, 동북면순문사,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공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397년(태조 6) 계림부윤(鷄林府尹)으로 부임하였으며, 다음해 왜구가 침입해오자, 이에 맞서 싸워 크게 무찔렀다. 형세가 불리해진 왜구들이 항복을 청해오자 항복을 받아들인 뒤 한꺼번에 섬멸하려는 전략을 세웠으나, 계획이 누설되어 왜구들이 도망쳐버렸다.
그 죄로 합산(合山)에 유배되었다가, 1398년 나주로 옮겨졌으나 곧 풀려났다. 그 뒤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로 있다가 1400년(정종 2) 이방간(李芳幹)의 난을 평정하는 데 협력한 공으로, 1401년(태종 1) 좌명공신(佐命功臣) 4등에 책록되었다.
1402년 문성군(文城君)으로 봉작되었고, 그 해 동북면순문사(東北面巡問使)가 되어 변방을 살피고 돌아왔다. 1404년에 대사헌에 이어 형조판서가 되었으며, 예문관대제학도 겸하였다. 그 뒤 판한성부사·이조판서를 거쳐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에 올랐으며, 다시 대사헌이 되었다.
1413년 문성부원군(文城府院君)으로 진봉되었다가 1415년 우의정으로 승진되었다. 조선의 창건에서 제도 확립에 크게 기여한 명신 중의 한 사람이다. 시호는 충경(忠景)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태조실록(太祖實錄)』
- 『정종실록(定宗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경재집(敬齋集)』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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