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천마총의 부장곽에서 다른 유리제 굽다리잔[高杯]과 함께 출토된 2점의 유리잔이다. 두 점 가운데 깨진 한 점과 달리 이 잔은 전혀 깨지지 않은 채 발견되었다. 군데군데 이물질이 있으며, 바닥은 가운데가 약간 들려 있다. 몸통의 윗부분에는 촘촘한 선무늬가, 아랫부분에는 거북등무늬[龜甲文]가 새겨져 있다.
짙은 남색의 유리제로서 군데군데 이물질이 붙어 있다. 몸통은 밑으로 내려갈수록 조금씩 좁아지며 밑바닥은 둥글다. 구연부는 살짝 밖으로 외반되었고 내부의 바닥 중앙부가 약간 솟아있으며 바닥의 닿는 부분만 편평하게 만들어 넘어지지 않는다.
유리잔의 표면에는 두 가지 무늬가 베풀어져 있는데, 구연부 바로 밑에는 세로로 난 줄무늬가 빙 둘러져 있으며, 그 아래로 거북등무늬가 새겨졌다. 이처럼 줄무늬와 거북등무늬가 새겨진 틀에 유리액을 대롱으로 불어 넣어 제작하는 형취법(型吹法)이라고 하는 특수한 제작기법이 사용된 것이다. 이 방법은 가는 파이프와 같은 불대[吹竿]쪽 끝에 도가니에서 녹인 유리를 묻혀낸 다음 이것을 무늬가 새겨져 있는 틀 안에 넣고 입으로 불면 유리가 부풀어지면서 틀 안쪽에 닿아 무늬가 찍혀져 나오도록 하여 만들어 낸 것이다. 유리의 질은 투명도가 높으며 기포도 거의 보이지 않아 고급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신라를 비롯한 삼국시대 고분에서는 이러한 유리제품들이 출토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신라의 고분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목걸이 등에 쓰인 작은 구슬들과 곱은옥이다. 이 밖에도 신라의 고분에서는 많은 수의 최고급 유리 그릇이 확인된다. 특히 유리그릇은 신라 고분에서 주로 발견되지만 최근에는 가야 고분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중앙아시아나 중국을 통해 들어온 수입품으로 생각되는데, 천마총 출토품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러나 천마총 유리그릇과 유사한 형태가 동아시아 지역에서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남러시아에서부터 서아시아 그리고 유럽의 4∼5세기 유적에서 비교적 많이 출토되고 있어 그 생산지에 관해서는 좀 더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 어쨌든 당시로서 이러한 유리제품은 왕실과 귀족 등 특수한 층에서만 사용될 수 있었던 중요한 교역품의 하나로서 머나먼 신라에까지 유입되어 왕실에서 귀하게 사용되다가 이처럼 고분에 묻혀 발견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