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3년(연산군 9) 의학교수(醫學敎授)를 역임하면서 내의로서 동반(東班), 즉 문신(文臣)을 제수받았다. 1507년(중종 2)에는 현감(縣監)에 임명되었다. 이조·병조로부터 의관에게 그 같은 벼슬을 내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상소가 올려져 취하당하였다.
1517년에는 대비(大妃)의 질환에 시약의원(侍藥醫員)으로 봉직한 공으로 당상관(堂上官)에 승진되는 영광을 누렸다. 많은 대간들의 끈질긴 상소로 이듬해 그의 승진이 또다시 취하되고 대신 쌀·콩으로 상을 하사받는 등 승급·승진에 따른 수난을 겪었다.
1524년에는 평안도 일대에 오늘날의 장티푸스·발진티푸스에 해당하는 온역(瘟疫)이 크게 유행하여 1년 사이에 사망자가 수만 명에 이렀다. 급히 왕명을 받아 당시 종6품 예빈시주부로 있던 그는 김순몽(金順蒙)·박세거(朴世擧)와 함께 온역에 대한 예방처방법 등을 간추린 언해본인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 1책을 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