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함흥 출신. 1584년(선조 17) 무과에 급제하고, 1590년 풍산만호로서 반호(叛胡) 마산덕(馬山德)의 군사를 격파하고 그 공으로 선전관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 함경도로 진출한 가토[加藤淸正]가 이끈 왜군에게 3부자가 사로잡혔는데, 홀로 탈출하여 의병을 규합하여 요해(要害)를 지키고 감사 윤탁연(尹卓然)의 명으로 토적장(討賊將)이 되어 왜적토벌에 앞장섰다.
오로리(五老里)에서 왜군을 습격하고, 이어 북병사 성윤문(成允文)과 함께 함흥의 왜군을 치기 위하여 황초령 기슭 원평장(元平場)에 진을 쳤으나, 왜장 나베시마[鍋島直武]의 출격으로 고전하였다.
이 해 전공으로 영건만호(永建萬戶)에서 삼수군수로 승진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에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가 되어 함경도에서 함께 싸우던 훈련이 잘된 군사들을 이끌고 영남으로 내려가는 길에 잠시 서울에 머무르면서 왕을 접견하고 일문일답을 나누면서 왕으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았다.
그 뒤 영남 지방에 내려가서 왜적을 토벌하다 전사하였다. 함흥 3걸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1666년(현종 7) 함경감사 민정중(閔鼎重)의 장계(狀啓)로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함흥 창의사(彰義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