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룡(子龍), 호는 소한당(素閒堂). 할아버지는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이고, 아버지는 유열(柳悅)이며, 어머니는 첨지 이위(李韠)의 딸이다.
1604년(선조 37) 14세 때 선조의 딸 정휘옹주(貞徽翁主)와 혼인하여 전창위(全昌尉)에 봉하여졌다. 1612년(광해군 4) 할아버지 유영경의 사건으로 일가가 멸족될 때 전라도 고부에 유배되었다.
1619년 장차 역모가 있으리라는 소문이 호남지방에 유포되자 경상도 기장(機張)으로 이배되었다. 여러 해 동안의 귀양살이로 토굴 속에서 햇빛을 보지 못하여 실명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즉시 풀려나와 작위가 회복되어 숭덕대부(崇德大夫)에 승품되고, 여러차례 승진하여 성록대부(成祿大夫)에 이르러 군(君)에 봉하여졌다.
1646년(인조 24)·1651년(효종 2)·1655년에 각각 사은사(謝恩使)·진향사(進香使)·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도총관에 이르렀다. 글씨에 뛰어났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