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명중(明仲). 유종(柳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사의(柳思義)이다. 아버지는 생원 유연(柳演)이며, 어머니는 남용신(南用信)의 딸이다.
1512년(중종 7)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31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1535년 홍문관저작이 되었다. 1538년 봉상시판관, 1541년 홍문록에 오르고, 1544년 종성부사가 되었다.
1547년(명종 2) 송순(宋純)과 함께 사은사로 명나라에 갔다. 명나라 관리가 바깥출입을 통제하므로 이에 항의하자, 예부상서(禮部尙書) 비채(費寀)가 “조선국 사신은 예로부터 예교(禮敎)에 익숙하여 다른 만이(蠻夷)의 나라와 같지 않다.”고 하며, 사관(舍館) 부근의 출입과 바깥 구경을 허가하여 주었다.
1548년 대사간에 임명되었으나, 간관의 장관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사헌부의 상소로 해임되어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어 우부승지를 거쳐 1550년 좌부승지가 되었고, 그해 도승지를 거쳐 병조참의가 되었다.
1555년 장례원판결사, 1557년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가 다시 형조참판이 되었다. 1560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으나, 나이가 많아 해경(海警)·구황(救荒) 등 업무가 많은 큰 도의 업무를 감당할 수 없다는 사간원의 상소로 황해도관찰사로 옮겼다.
그러나 이곳 또한 임꺽정의 소굴로 화적떼가 횡행하므로 문무를 겸비한 자로 임명하여야 한다는 대간의 건의로 사직하였다가, 1573년에 개성유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