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충주(忠州)이다. 1012년(현종 2) 윤10월 예부시랑(禮部侍郎)으로서 거란에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뒤에 국자좨주(國子祭酒)가 되어 1020년 5월의 복시(覆試)를 주관하였다. 1022년 정월 한림학사 비서감에 제수되고, 다음 해에 또다시 거란에 사행(使行)하였다.
1024년 정월에 예부상서(禮部尙書)가 되었으며, 같은 해 3월 지공거(知貢擧)로서 이자연(李子淵)을 장원으로 뽑았다. 1030년 5월 태자빈객(太子賓客)에 보임되었으며, 1032년(덕종 1) 3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그리고 상서우복야를 거쳐 1036년(정종 2) 3월에는 참지정사 겸 서경유수사(參知政事兼西京留守使)가 되어 재상의 반열에 올랐다.
다음 해 7월 내사시랑 동내사문하평장사(內史侍郎同內史門下平章事)·서경유수사로 승진하였다. 1040년 문한(文翰)으로서 현종·덕종·정종 3대를 보좌한 공로가 인정되어 아들 유작(劉綽)에게 공부서령사(工部書令史)를 제수하는 공음(功蔭)이 베풀어졌다. 1042년(정종 8) 6월 세상을 떠났다.